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생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일견 무척이나 따뜻하고 호의적인 말로 들린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혹한 절망의 언어다. 스스로 자존할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의 그 무엇도 부정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제아무리 스스로를 긍정하려 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리석은 발버둥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극복하지 못한다.
모든 언어는 그 언어가 지향하는 바를 따라가지 못한다. 기표는 기의와 일치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자명한 사실이다. 이 차가운-포스트모던이라는 유령이 '이미' 지나간 시대에서 상징은 이미 차고 넘쳐 오히려 아무것도 상징하지 못한다. 상징하는 것이 너무 많기에 오히려 하지 못한다는 이 역설의 시대에서 우리는 '너'를 갈망한다.
비극적인 결말이다.
인류가 탄생하고 스스로의 안전을 꾀하며 진화하고 협력하고 문화를 쌓아올린 긴 시간동안 우리가 원해온 것은 언제나 '너'였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느끼는 그 순간 우리는 '너'를 원한다. 그것이 어떤 '너'이든 관계없이.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단 한가지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차라리 비극이다. 비극을 넘어서 희극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그것을 앎에도 우리는 그만두지 못한다. 우리는 '너'를 원한다. '너'를 갈망한다. '너'를 소망한다. '너'를 증오한다. '너'를 미워한다.
다만 우리는 '너'를 꿈꾼다.
라는 잡소리와는 별로 관계없을 듯한(?) 작품인 '희망을 위한 찬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친절한 글 중 하나라고 느끼는 것은 저뿐일까요.(....)
방금 전 새 글이 등록되었으니 어서 가서 읽어보도록 합시다. 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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