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작성자
Lv.4 호테이
작성
10.12.10 22:19
조회
1,812

나는 그저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이 먹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원대륙에서 들여온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여 아이스크림도 그리 귀하지만은 않은 음식이 되었다고 해도 나 같이 촌구석에서 사는 사람에겐 아직 자주 먹기 힘든 기호품이니까. 모처럼 큰 도시에 머물게 되었으니 어릴 적 한 번 맛보고는 반해버렸던 그 맛을 다시 느끼고파 길을 나섰을 뿐이다. 코 내놓으면 얼어 떨어져나갈 것 같은 한겨울이라는 사실은 문제 되지 않았다. 여름에 나는 수박은 여름이 제철이고 가을에 열리는 사과는 가을이 제철이듯, 겨울에 어는 얼음을 이용한 아이스크림은 겨울이 제철인 법.

그런데 어쩌다가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후덥지근한 열기에 몸을 맡기게 되었는지..

“꺄아악! 꺄악! 으허헉! 구르구르! 날 가져요!!”

“삐링뽕 삐링뽕! 뇨롱뇨롱 빠응상! 분홍괴생명체!”

“진님! 아다만티움 두건 32색으로 갖춰놨어요!!”

“나하야!! 나하야!! 개구리 루트 확실하지?  그런거지?”

어디서 아이돌 음유시인이라도 온건지 광장을 가득 메운 사방에서 부딪혀오는 36.5도의 열기에 겨울 제철의 아이스크림 맛을 즐기긴 글렀단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 생존을 위한 아이스크림이 되겠군.  근데 이것들은 정말 대체 뭐야, 광신도들인가..? 아이돌 음유시인 팬클럽이라면 뭔가 통일 된 색깔이나 마스코트, 구호 같은 것도 있을 법 한데 이 군중은 하나같이 정신 나가 보인다는 것만 빼고는 도무지 통일성이 없었다.

“저기…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뭐? 자네 지금 진심으로 묻는 건가? 지금 마부추가 왔잖은가!! 설마 마부추를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뭔..부추? 죄송합니다만 전 총각김치 파라…”

윽. 말을 뱉은 즉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 앞의 남자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더니 폭포와도 같은 일장 연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치라니! 방금 부추김치 취급하려고 한건가? 부추김치가 아니고, 마왕부활추진대!  소중한 사람의 유언 때문에 마왕을 부활시키기로 결심한 인간 흑마법사 소년이 대륙을 떠돌면서 여러 사건을 겪고 동료를 만나는..컨셉의 아이돌 그룹이라네!”

“아닌 것 같은데?! 뭔놈의 아이돌 그룹이 쓸데없이 서사적이야?”

“리더인 나하사는 어리고 귀여운 외모를 내세워 누나팬들을 공략하고 있지. 헌데 이상하게 아저씨 팬들을 더 끌어당기고 있어..들고양이와도 같이 차갑고 시크한 듯 한데 묘한데서 허술하고 어린애 돋는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매력 포인트라나? 하여튼 리더인 만큼 가장 크고 대중적인 팬덤이네. 공략법은 힐본세 특제 고추장. 살짝 찍어먹어봐서 혀가 지옥의 유황불에 불타는 것 같이 괴롭다면 합격.”

“저기요, 팬덤 분석따위 듣고 싶지 않은데요? 공략법 같은 건 더더욱 듣고 싶지 않습니다만?”

“진님은…아름다우시지.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추고 립서비스도 개판이지만 아름다우시지. 칠흑같은 장발, 흑요석 같은 눈, 귀족적인 콧대와 황금비율의 입술. 거침 없는 기품, 인정사정 없는 기럭지.. 뇨롱, 빠응상, 빵꾸 등 친숙한 어감의 유행어를 사용하셔서 우리들과의 거리를 좁히려 노력하시지만 도무지 가까워질 수 없는 천상의 존재랄까? 두건을 즐겨쓰시는 그 분을 위해 우리는 매 콘서트마다 한땀 한땀 정성들여 아다만티움 두건을 만들어가곤 해.”

“눈물겹네요. 팬들 덕에 두건 걱정은 없겠어요.”

“팬들이 보낸 두건은 항상 살포시 즈려밟아주시지. 그래도 두건 걱정은 안하시는 분이야.”

“아, 네.”

“우리의 히로인, 홍일점 네라를 빼놓을 순 없지. 분홍 머리에 청록색 커다란 눈망울..청순하고 귀여운 외모의 그녀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

“뭐요, 라고 물어봐야 하는거죠?”

“사람 빡치게 하는 능력.”

“거 참 아이돌로서 쓸모있는 능력이네요..”

“마지막으로 우리 마부추의 아이덴티티이자 마스코트인 구르! 키도 크고 다정하고 우유도 좋아하고 애교도 많은..”

“오 왠일로 좀 정상적인..”

“개구리야.”

“사람이 나올리가 없지. 미쳤어 이 그룹은.”

“관심 있다면 이 책자를 읽어보길 바라네. 마부추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어. 그럼 곧 노래가 시작할 것 같으니 나는 이만.”

사내가 내민 책자는 두툼한 것이 족히 소설책 한 권은 되어 보였다. 마왕부활추진대, 라고 큼직하게 박힌 제목 밑에는 조그마하게 팬클럽 이름이 적혀 있었다.

By. 마부추김치가총각김치보다우월하다는것은태초부터의진리

……결국 부추 김치 맞잖아!

저 멀리 무대에서 갈색 머리에 동그란 눈의 소년이 마이크를 잡았다. 노래를 시작하려나 했더니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가는 대신에 지 머리 위로 가져간다.

“여러분 안녕하냐 개굴! 3개월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마부추다 개굴!”

분홍 머리를 양갈래로 발랄하게 땋은 소녀가 곧 말을 잇는다.

“예전에 마부추김치에 속해 있던 분들은 당장 돌아오십시오. 현재 보고 있는 분들은 그냥 계속 보십시오. 마부추를 아직도 모르시는 분들은 당장 게시판으로 달려가십시오. 왜냐고요? 우리가 미모가 쩐다는데, 그것 말고 또 이유가 필요합니까? 이 세상 사는 데 다른 것 다 필요 없습니다. 결국은 미모로 귀결됩니다.”

그 미모가 쩐다는 흑발 남자가 조용히 무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두건을 벗고 주위를 휙 둘러보고는 다시 뒤로 돌아갔다. 미모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는 꽃병풍인가보다.

저 비정상의 무리에 둘러싸여 있으니 정상의 정점을 찍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리더 소년이 이번에는 마이크를 제 입으로 가져다대고 차분히 말했다.

마왕부활추진대, 지금 시작합니다.”

---

마지막 대사랑 책자의 제목은 포탈입니다. 처음 걸어봐서 제대로 됐는지 모르겠네요..

실제 작품은 아이돌 그룹에 대한 거 아닌거 아시죠?ㅋㅋ잉여력이 폭발해서 끄적인 정신나간 추천글이 작가님께 누나 안됐음 합니다..요지는 마왕부활추진대 강력추천!

(작은숲님 다음 편 언제 나와요..시름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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