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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집필의 매력과 위험성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12.03.14 17:16
조회
945

쉽게 생각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수많은 곳에서 공동집필이나 세계관 공유 등의 작업을 시도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일이 진행되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제대로 완성품이 나올 가능성도 낮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라면, 전 대충 이 정도로 요약하겠습니다.

1. 서로가 생각하는 틀의 차이.

세계관 창조부터 부딪치는 문제입니다. 완벽하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생각하는 것들 중 여러 부분이 '일치'하는 것일 뿐이죠. 문제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서 생겨납니다. 이 때문에 같은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설정상의 요소에 대해 다른 논점으로 접근해버려서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지요. 흔히 말하자면, 의도치 않게 '설정파괴'가 심심찮게 벌어지는 등의 일 말입니다.

2. 의견교환의 어려움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들, 머리 속에 있는 걸 꺼내서 남들에게 표현하거나, 혹은 교류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독자적인 완성품에서도 '아, 그렇구나'에서 끝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공동작업의 경우에는 그런 충돌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게다가 글 하나를 쓰려고 투자하는 시간 외에 공동작업자와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오가야 하니, 이 때문에 작업시간이 부쩍 늘어나게 됩니다. 그 자체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소모됩니다.

3. 조율과 정리의 어려움

의견 교환을 하더라도 결국 합의점을 도출하게 되긴 합니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작업 진척이 많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좋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 판가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세계관을 만들 때 소위 말하는 '죽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만드는 건 쉽습니다만 결과물이 그 사람들만 좋아하는 것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많은 머리가 모인다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이 나오진 않는다는 것이죠.

다른 방식, 그러니까 무작정 세계관이나 설정을 쌓아놓고 그 중에 좋은 걸 추려내어 투입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허나 이런 건 자칫 세계관만 쌓아놓고 그걸 기반으로 완성품을 내놓는 과정에서 흐지브지해질 수도 있습니다. 세계관 쌓다보면 재미있고 즐겁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은 '글'을 원하지 세계관을 원하는 건 아닌 법입니다. 결국 글을 쓸 세계관을 왕창 쌓아놓고, 정작 써야 할 걸 어떻게 해야 하나 가닥을 잡지 못해 무너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4. 일관성

솔직히 전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머리가 하나 늘어나면 생각이 하나 더 생깁니다. 릴레이 소설 같은 경우에는 글쓴이마다의 개성까지 더해져서 연재분량을 쓴 사람마다의 차이가 드러나게 되는데, 글의 흐름을 망칠 가능성이 큽니다. 글 쓰는 스타일이 비슷해도 이런 차이는 미묘하게 드러나고, 큰 차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 때문에, 공동집필이나 릴레이 소설은 생각보다 더욱 어려운 작업이 됩니다. 물론 작업 자체에서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러 사람과의 작업'에서 얻는 노하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상 매력은 있으나, 그리 큰 실속은 얻는 건 아니지요. 흥미나 이벤트로서 가볍게 참여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되겠지만, 누군가와 작정하고 그런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선... 글쎄요, 차라리 저같으면 분업을 택할 것 같습니다. 세계관이나 설정을 짜는 이를 두고, 그걸 글로 표현하는 이를 두는 쪽으로 말이지요.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작업이나 릴레이를 쓸 기회가 생긴다면, 전 이런 룰을 두고 진행하겠습니다.

1. 참가자는 각자 세계관에서 '절대자'의 역할을 정한다.

2. 참가자는 각자 한 번씩 세계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규칙을 정한다. 단, 이 규칙은 다른 참가자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2. 참가자들은 각자 한 번씩 다른 참가자의 규칙을 수정하거나, 혹은 패널티를 부여할 수 있다.

3. 2,3번의 과정에서 각 참가자들은 서로의 규칙에 대해 협상할 권리를 지닌다. 이 협상은 제 3의 참가자들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만 효력이 생긴다.

4. 2,3,4번의 과정을 거친 설정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설정으로 확립된다. 4번으로 완성된 설정은 다시 2,3,4번의 과정을 거쳐 변동이 가능하나, 설정 자체를 없애거나 무력화시킬 수는 없으며, 이를 상쇄할만한 새로운 설정의 도입에 관해선 2,3,4번의 과정을 거쳐 논의한다.

이런 규칙을 집어넣으면, 각 참가자는 세계관 설정 때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현해낼 수 있고, 다른 참가자가 구현한 규칙에 패널티나 방해요소를 설정할 수 있겠지요. 물론 마음에 안 드는 설정에 대해선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견제도 가능하기 때문에 작업자들 간의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역으로 그런 와중에 생기는 분쟁요소가 설정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지요.

이렇게 되면 적당한 균형을 가지면서도 혼자만의 생각을 강요하지 못하는 세계관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은, '절대자'들이 서로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훼방을 놓는 가운데, 그 사이에 끼인 주인공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불쌍하지만 보기엔 즐거운 글이 나올 지도 모르겠군요.


Comment ' 6

  • 작성자
    Lv.61 honolulu
    작성일
    12.03.14 17:29
    No. 1

    음...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일관성이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RALL
    작성일
    12.03.14 17:33
    No. 2

    공동창작의 문제점을 잘 짚어주셨어요. 실지로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건 여럿 형태로 존재해 왔는데, 그 변천사를 보면 재미있지요. :)
    한참 PC통신이 성황일 시절에는 가상세계라 불리는 공동 역할창작놀이가 대세였고, 이어 릴레이 소설, 몇 년전엔 소설 커뮤니티도 한참 흥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많이 모일 수록, 각 창작자에게 세계관과 플롯을 정할 수 있는 주도권이 많이 주어지면 주어질 수록 마찰이 심했고, 결과적으로 제대로 '끝난' 공동창작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창작자들은 특히나 각자 개성이 유별나기 때문에 더 심하고요.

    매력적인 시도임은 분명합니다. 냉정과 열정사이 같은 작품만 봐도 인터렉티브 문학은 얼마든지 시도될 수 있고, 제대로만 맞물린다면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마치 전혀 조화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조각천들이 훌륭한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듯이)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아마 개개인이 각자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희열과는 또 다른 형태의 희열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영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컴터다운님이 말씀하신대로 의견 화합을 위한 룰 책정이 필요하겠고, 이야기 진행을 위한 플롯을 치밀하게 짜야하겠지요. 조금만 어긋나도 불협화음이 될테니까요...

    저는 꽤 가능성 있고 시도할 가치가 있는 영역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03.14 17:39
    No. 3

    결과물을 크게 바라지 않고 그 과정 자체만으로 만족한다면, 시도할 가치는 있습니다. 다만 단독작업 그 이상의 것을 바라고 참가할 때는 늘 참해하는 법이지요....
    콜라보레이션을 언급하셨는데, 그것도 어디까지나 '완성품'이 나와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허나 릴레이 소설이나 공동집필은.... 완성품이.... 아, 슬프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RALL
    작성일
    12.03.14 17:43
    No. 4

    컴터다운 님/ 그렇죠. ^^; 언급하신 어려움 때문에 공동창작이 '완성'되기는 정말 힘들죠... ㅠ_ㅠ 지난 시간 공동창작 시도가 조금씩 다른 형태로 성행했던 걸 보면 사람들도 공동창작이 가진 매력을 잘 인지하고 있고, 또 욕망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을 해요.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협업을 통해 그걸 클리어할 때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지도 모르겠고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太極
    작성일
    12.03.14 20:26
    No. 5

    일관성이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네요.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쥬주전자
    작성일
    12.03.15 09:17
    No. 6

    TRPG같은 느낌이 나는군요. ㅎ 스토리라인을 같이 잡아도 연재분량이 한쪽이 높아버리면 나름 또 애로사항... ㅡㅡ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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