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문피아의 모든 분들이 추워지는 날씨에도 부디 건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시간이란 참 빠릅니다.
제가 처음으로 문피아에 와서, 그야말로 난생처음 끄적여본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올해 봄이었는데, 벌써 가을이 되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던 이직 기간 도중, 문득 제 아내에게 소설을 써주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자 끄적이기 시작한 것이, 제가 글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이후 아내가 어디 인터넷에라도 한번 올려보라고 하여 여기 문피아까지 흘러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부끄러운 제 글을 재밌게 봐주신 분들 덕분에 골베도 한번 찍어보고, 출판도 하게되었습니다.
다시 돌이켜보니, 많은 분들께서 제 글을 봐주신다는 사실에 역시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솟구칩니다. 제 글이 뭐가 좋고 뭐가 안좋은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지금 첫 소설의 4권째를 쓰고 있고, 앞으로 두어권 더 쓸 예정입니다. 이럴 수 있었던 모든 것은 역시 재밌게 봐주신 독자분들 덕분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상황으로선, 아마 앞으로 계속해서 글을 쓰는건 힘드리라 봅니다. 맞벌이 부부인데다 지금 당장 무슨 경제적인 압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 집의 가장으로써 열심히 일해야하는 제가, 직업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곤란한 점이 많은 '장르소설의 작가'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어디까지나 '아마추어'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추어라는 말이 저에게는 딱 맞습니다. 저는 제가 '프로' 혹은 '작가'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고, 출판사의 담당자분께서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면 부끄러운 생각이 먼저 드니까요.
독자분들께서 '작가님'이라고 덧글로 불러주실때도 역시 부끄러운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건..."과연 나의 글이 '작가의 글'이라고 불리기에 합당할까?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더욱 부끄러워집니다. 저는 저 스스로 저의 글의 한계를 알고 있고, 헛점도 알고 있고 이상한 부분도 알고 있으며 뭔가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나 불필요하게 집어넣은 부분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자신의 글이 '얼마나 모자란지' 잘 알고 있기에, 작가라고 불리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비록 내 글 솜씨가 원래부터 별로라서 글이 별로인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다해서 조금이라도 더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보자"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요 몇개월간, 저 나름대로는 참 진지하게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이런 행동을 해도 될까?",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어떤 생각을 해야할까?", "너무 한 캐릭터를 띄워주진 않았나?", "이런 전개는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이 우연은 너무 억지스럽지 않을까?", "이런 내용은 다른 소설에도 있지 않았나?"...이런 생각들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 와중에 부끄럽게도 출판사와 마찰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비록 저의 글이 별로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고민해서 쓴 글인데, 뭔가 외부의 사정으로 왜곡되거나 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지요. 출판사와 저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예전에 글을 올린 적이 있어 아실 분도 계실 것 입니다.
그런데 그때 어느 분께서 이런 덧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어차피 대여점에서 대여되는 소설인데,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이런 덧글도 있었지요.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서점용 책을 써야지, 대여점용 소설이나 출판사에 그리 많은 것을 바라면 안됩니다"...
사실...위와 같은 덧글은, 저 자신도 하루에 열두번을 넘게 생각했던 문제입니다.
예, 현실적으로는 아르바이트 정도가 될까 말까 하는 돈을 받으면서, 그리고 대개 시간 떼우기로 읽는 소설을 쓰면서, 뭘 그리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저 자신도 수없이 자문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문합니다. "작가로 불리기에도 부끄러운 글을 쓰면서, 그리고 직업 작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뭘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나?" 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조건들은 상충하고, 결국 저로서는 "별 수 없구나" 하고 자조적으로 웃으며 다시 진지하게 글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이건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 문피아에도 많은 작가분들이 계시고, 아마 이런 생각을 많든 적든 한번쯤은 다들 해보셨으리라 추측합니다.
그리하여 이곳 문피아를 통해 많은 작가분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또한 새삼스럽게 깨우치고 느끼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답답한 상황에 분노하기도 하고 때로는 침묵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되돌아보면 오늘처럼 이상하게 회한이 듭니다. 그리고 그럴때면 예전에 독자분들께서 보내주신 격려들을 되돌아봅니다. 그러면 다시 조금 힘을 냅니다.
아마도, 언제까지나 아마추어인 저로서는...제가 썼던 글이나 그것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읽어주신 분들이 남겨주신 말들을 결국에는 모조리 잊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는 것에서 손을 떼고 다른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비록 아마추어고 글솜씨도 형편없고 쓸데없이 진지하기만 하고, 결국에는 글을 쓰는 것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하더라도, 지금은 회한보다 한 글자 더 쓰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런 생각 끝에 다시금 저는 고민을 시작합니다. "지금 이 대목은 괜찮은 건가?"하고.
긴 넋두리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시 한 번 추운 날씨에 건강 상하지 않으시기를 기원합니다.
Commen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