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편을 찾아보면 '이(夷)'라는 글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이(夷) : 大(대☞사람)와 弓(궁)의 합자(合字). 사람이 활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뜸. 옛날 東方(동방)의 오랑캐를 夷(이)라고 불렀으므로, 음을 빌어 이 글자가 쓰임. 또 平定(평정)하다, 항상 변하지 않다 등의 뜻으로 빌어 쓰임. 회의자(會意字)
㉠오랑캐
㉡동방(東方) 종족
㉢잘못
㉣상하다
㉤죽이다
㉥멸하다(滅--)
㉦평평하다
㉧평탄하다
㉨깎다
㉩온화하다
㉪안온하다
㉫기뻐하다
㉬크다
동이(東夷)라는 말은 중국의 유명한 고대 역사서인 전사서(史記,漢書,後漢書,三國志) 중 하나인 삼국지에 처음 등장한다.
삼국지는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으로 되어 있는데, <위지> 30권 중에 <동이전(東夷傳)>이 들어 있다.
동이전에 기록된 나라가 부여 ·고구려 ·동옥저(東沃沮) ·읍루(挹婁) ·예(濊)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왜(倭)등이다.
우리 민족(韓民族)을 비롯한 동방 민족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으로서 고대사(古代史)의 유일한 사료(史料)인 셈이다. 하지만, 삼국지는 중국의 위(魏) ·촉(蜀) ·오(吳) 3국의 정사서(正史書)이다.
삼국지의 저자는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것이다. 진수는 위나라의 황조(皇祚)를 이은 진(晉)나라에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 만 제기(帝紀)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열전(列傳)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사가(史家)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를 서술하는 관점을 저자의 출신국에 너무 치우쳐 썼다는, 요즘 말로 객관성을 잃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모든 역사서는 항상 서술 당시대의 관점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족을 단다면, 이런 측면에서 김 부식의 삼국사기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서술관점이다.)
중국의 위나라를 철저히 세계의 중심으로 보고 사방에 오랑캐가 포진해 있는 것이다.
동쪽엔 이(東夷), 남쪽엔 만(南蠻), 서쪽엔 융(西戎), 북쪽엔 적(北狄)이다. 하지만, 우리로선 오랑캐가 아니라고 반박할 근거를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에 대한 그 시대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에 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으로서 고대사(古代史)의 유일한 사료(史料)가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의 위지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국인의 입장에서 철저히 동쪽의 야만인이며 침략자로 쓰는 동이(東夷)라는 글자를 우리는 왜 옹호하고 좋게 억지 해석을 해가며 못 써먹어서 안달을 하는가? 심지어 이(夷)라는 글자가 '활을 잘 쏘는 민족'을 칭한다느니, '떳떳하다'는 뜻이 있다느니 하고 억지로 해석을 하면서까지 우리는 동이라는 단어를 쓰려고 한다.
(혹시 그것은 아직도 우리 민족의 청산하지 못한 사대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반적인 정설로 인정받는 사학의 어떤 문헌에도 동이를 그렇게 해석하는 학자는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서 대로, 정서의 기록 대로. 확대하여 해석할 필요도 없고 축소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해석하여 아! 중국인들이 고대에는 우리 한민족을 동쪽의 오랑캐라고 말했구나. 그렇니, 우리는 우리 스스로 동이라는 말을 쓰면 이게 우스운 꼴이 되는구나...하고 자각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게시판 글을 읽다가 너무 비약하여 해석하는 글들을 보며 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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