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쪽에 '사실적인 묘사'를 요청한 글을 보고 생각나는 바가 있어 몇자 적습니다. 미리 명시해 놓겠습니다만, 이 글은 특정인물이나 작품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무함을 밝혀둡니다. 다만 생각보다 뿌리깊은 몇몇 독자들의 오해를 청산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에또, 그리고, 전무할수는 없겠지만, 이 글에 대한 사소한 오해들을 최소화 하고자 문장이 좀 딱딱해 지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제가 워낙에 불민한지라 이 글에는 오류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태클 환영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모두가 아는 한가지 정의를 명시해 놓겠습니다.
<소설은 개연성있는 허구다.>
우리 문피아 분들은 메밀꽃필무렵을 적어도 한번쯤은 읽어 보셨을 겁니다. 거기에서, 허생원은 동이가 왼손잡이인 것을 보고 그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죠. 그러나 모두가 아시듯, 왼손잡이는 유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문제삼지는 않습니다.(아니, 문단에 한분 있기는 했군요.^^; 잔뜩 비난받고 얼른 의견 철회 하긴 했지만 ^^;)
왜 일까요? 그것은 소설이 엄정한 사실만의 전달을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소설에 허구가 용인되는 것을, 비현실의 소설적 허용이라고 합니다.(작가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저같은 독자들 중에는 모르는사람이 있기에 ^^; 말이 늘어지는것을 막고자 용어를 명시해둡니다.)
'비현실의 소설적 허용'은 '신뢰성'이란 단어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독자가 허구를 보고도 리얼리티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무협과 판타지의 설정들이 죄다 말이 되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잘 쓰인 무협을 보면서 ‘엉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협은 사실적이지 않지만 독자에게 신뢰감을 주기 때문입니다.(누군가 말했듯, 독자는 사실성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신뢰성만을 따질뿐이지요.)
허나 일반적인 상식과 지나치게 위배되는 설정이 있다면 신뢰성에는 치명적인 금이 갑니다. 일전의 ‘중력’설정 논란도 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에에, 설명이 부족하므로 첨언하자면, 중력이 약한 행성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강자가 되었다라는 설정입니다. 중력이 약하므로 뛰는것도 높이 뛰고 무거운 물건도 쉽게 들었다, 라는 설정이지요. 사실 그렇지 못하다는것 쯤은 어렸을때 보았던 달의 우주인을 생각하면 쉬이 증명됩니다만.) 그리고 설정이 일관적이지 못하거나(월풍이었나요? 일전에, 시간이 과거로 돌아가서 몸도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갔는데도 내공만은 그대로 남아있어서 논란이 일었던 소설이 있습니다. 그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플롯에 결함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개연성의 문제가 불거져 나옵니다.(사실 개연성의 의미는 좀 더[=훨씬 더] 포괄적입니다만 한정적으로 인용합니다 ^^;) 독자에게 충분한 신뢰성을 주지 못한다면, 독자가 소설에 몰입하지 못하고, 결국 ‘재미 없다’라고 느낍니다. 아무리 묘사가 훌륭하고 담고있는 의미가 좋더라도 몰입이 되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겠죠.(초식명을 외치고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는 전투가 오래된 무협 독자에게 외면당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여기저기서 보이는 발언이 문제가 됩니다. “어차피 판타지는 전부 말도 안되는것, 다 작가 설정이잖아요?” 어차피 허구이긴 하지만, 그 허구가 독자에게 충분한 신뢰성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이지요. 이쯤 와서는 작가의 역량에 모든 것이 맡겨 지는군요. 이 이상가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바에서 3만광년쯤 멀어지는 고로 글을 이만 줄이도록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1. 소설은 개연성 있는 허구이다.
2. 이 허구는 비현실의 소설적 허용(=신뢰성)이라는 장치에 의해 용인된다. 작가는 글속에 독자가 몰입할수 있을만큼의 충분한 신뢰성을 담아야 한다.
3. 몇몇 설정들이 비판받는 이유는 사실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신뢰성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4. 따라서 ‘판타지나 무협은 어차피 허구이므로 작가의 설정에 대해 왈가왈부함은 옳지못하다.’라는 의견에 반대하는 바이다.
그럼, 좋은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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