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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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9 이혁
- 05.11.06 17:51
-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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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8 bo****
- 05.11.06 18:01
-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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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과방패
- 05.11.06 18:02
-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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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과방패
- 05.11.06 18:04
-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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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9 이혁
- 05.11.06 18:06
-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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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드라카
- 05.11.06 18:08
- No.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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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3 風量刀
- 05.11.06 18:39
- No.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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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0 백린(白麟)
- 05.11.06 18:41
- No. 8
1.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군세기는 위서입니다.
- 그러나 화랑세기는 위서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세 책을 입증하려면 최소한의 증거는 있어야 합니다.
2. 신대문자라는 것은 조선 통신사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이 정설일 겁니다.(오래 전에 본 내용이라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대문자가 한글의 원형이 될 수는 없습니다.(시대 문제도 있고... 그래서 일본 내에서도 이 학설은 바보 취급 당하는 사람들이나 주장하고 있는 학설입니다.)
- 그러나 가림토라는 것은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가능성' 문제입니다.
3. 북방 유목민족은 크게 3 갈래로 나눕니다.
1) 몽골계
2) 투르크계
3) 퉁구스계
훈이라고도 불렸던 흉노는 투르크계라는 설이 대세이며(그러나 지배층은 몽골계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이후의 유목민족 역시 대부분이 투르크 계입니다.(유연, 몽골, 거란, 여진 정도가 예외가 됩니다.)
유연과 몽골, 거란은 몽골계에 속하며, 여진(만주족)은 퉁구스계로 보고 있습니다.(이 부분은 세계 유목민족사의 1인자라고도 불리는 르네 그루쎄의 저서 '유라시아 유목민족사' 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다수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민족은 위의 3 가지 분류에 속하지 않습니다.
- 굳이 따지자면 탁발-선비와 비슷한 부류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만, 그것 역시 확인되지 않았으며 아닐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p.s 터키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는 6.25 때문입니다.
터키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병력을 동원했으며(5000명), 연합군의 총 군대가 약 20만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참고로 중국이 동원한 숫자 역시 약 20만 정도로, 중국이 사용한 전술이 인해전술이라는 것은 거짓입니다.)
물론 돌궐과 고구려의 접촉은 있었습니다만, 실패로 끝난 접촉인데다 매우 일시적인 접촉이었으며, 현재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와는 관계가 없다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
- Lv.50 백린(白麟)
- 05.11.06 18:41
- No.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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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0 백린(白麟)
- 05.11.06 18:42
- No.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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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99 레옹1
- 05.11.06 19:26
- No. 11
조선시대에 쓰여진 환단고기가 정사일 수는 없겠죠. 솔직히 쪽팔리는 얘기입니다만 삼국시대도 선사(先史)시대에 속합니다. 글로 쓰여진 기록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설총이 이두를 만들긴 했지만 남아있는 것은 향가 몇 수 정도만 남아있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오히려 지금보다 삼국시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고려시대에 쓰여진 책이라 그리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죠. 하물며 고조선시대는 여러 유물로 봐서 존재하기는 했지만, 역사이전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원을 기원전 2333년으로 하는 것은 삼국유사에 고조선이 은나라와 같은 해에 건국했다는 기록에 따라 은나라 성립시기인 기원전 2333년에 맞춘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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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63 환노
- 05.11.06 19:56
- No. 12
레이반 님.
음 역서에 나오는 글이라고 무조건 믿으면 안되져.
특히 한단고기,규원사화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가 가장 약한 조선 중,후기에 쓰여졌고 사실 그 마저도 확실치 않음.
민족의식을 고양하기 위해서 지어진 책이 라는게 거의 확실하니까여.
그리고 단군조선이 패해서 돌궐이 되고 투르크 터키로 변해서 형제의 나라가 됬다는 말 다른데서는 하시면 안되여.
터키가 6.25에 참전해서 혈맹의 나라로 불리는건 상식인데(그리고 미국 다음의 군사 파병이 아닌 미,영 다음의 세번째 규모였져.) 단군조선이 터키라니 맙소사
터키는 오스만 투르크 그 전에는 비잔틴 제국 그 전에는 로마의 식민지 그 전에는 페르시아의 속방 그 전에는 앗시리아 그전에는 히타이트제국 이랍니다.
돌궐설 자체가 말이 안되져.
흉노도 훈족이라는 정확한 설은 없는데여.
음 역서를 공부하시고 싶은데 정확히 모르신다면 한단고기 한권 읽고 아 그렇구나 이런 미스테리가 있어,
하는 것보다는 삼국사기,신채호님의 조선 상고사,일본서기(백제 쪽 기록은 오히려 우리나라 역서 보다 잘 기록 되어 있져)
중국의 우리나라 삼국시대 기록인 북사 ,송서,자치통감,구당서,신당서
등에 삼국(고구려,백제,신라)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들이 나오져.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그 어떤 역서도 믿을 수 없고 발굴을 통한 실증적 접근이 가장 현명하구여. -
- Lv.43 청풍야옹
- 05.11.06 20:07
- No.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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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3 저팔계6
- 05.11.06 20:15
- No. 14
모든 나라의 역사는 딱 이렇다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위 어떤 분이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물론 물직적 증거가 있으면 좋겠지만
먼 옛날의 유물이 발견된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각 나라들은 대충 자기나라에 유리한 쪽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증거를 없다고 하면서 최대한 역사를 축소시키려고 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역사 깍아먹는 나라입니다.
일본과 중국은 없는 것도 조작해서라도 자기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가는데 우리는 있는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증거가 없다면서...
참 웃기는 이야기지요.
또 위서라는 책도 참 웃깁니다.
위서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런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책들을 보면서 계속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일단 한가지 이상한것이 있다면 무조건 위조라고 하면서
외면합니다. 정말로 조선시대에서 만들었다면 거짓으로
쓴 내용인지 아니면 옛날부터 내려온 책을 보고 다시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진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중대시대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때는 그런 사람들이 지식인들이였지요.
혹시 지금 우리들은 그런 지식인들이 아닌가 반성해야 합니다 -
- Lv.3 대지중해님
- 05.11.06 20:17
- No.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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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68 불량회원
- 05.11.06 20:19
- No. 16
'예'님은 무조건 규원사화나 한단고기가 위서라고 하시는데...사실 위서의 진위 여부는 확인이 상당히 어렵습니다...이것은 많은 시간과 국제적인 도움(중국과 주변국의 역사 유물 확인작업)이 정말 필요합니다...그리고 한단고기와 단군세기가 조선중후기에 작성됬다고 하시는데..정확한것은 아닙니다...태조 이방원이 나라를 해치는 서적이라고 많은 책을 불태울때 그중에 단군세기나 삼성기 등의 이름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더군요..,이들중에 정말로 정확히 얼마나 전해졌는지는 미지수지만 확인이 안된것이기에 단언은 상당히 무서운것입니다.....
중국의 중화사상이 무서운것마냥 우리의 국수주의도 역사를 왜곡할수 있습니다..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역사를 단언하는것 또한 왜곡할수 있습니다...조금더 객관적이고 가능성을 열어놓구 생각하시는게 나을듯 싶네요...
세계에서 가장오래됀 목판인쇄본인 '무주정광대다라니(불국사석탑 보수시 발견)'도 지금 제작 위치 확인이 중국과 우리나라사이에서 벌어지는 중이죠....중국은 자기네서 제작했다..라고 우기고..하지만 문제는 중국에서는 닥나무로 만든 한지가 생산을 안하거든요...특히 우리의 한지 제작기법중의 도탐은 전혀 하지않는데 대다라니는 도탐된 한지위에 인쇄된것이라 중국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에거거 너무 샜네요...
이처럼 유물의 진위여부 뿐만 아니라 유물의 제작기법 문화적 영향드등을 가지고도 중국과의 마찰이 상당합니다....이를 어찌 극복할지는 뭐라 말하기도 뭐하네요....참고로 고조선유물은 우리나라 보다는 중국에 아주 많이 남아있죠...중국애들이 공개를 안해서 그렇죠...3000년넘은 유채색 도기 등이나 찰갑의 원시형태로 보이는 청동단추등 너무 힘든 조건이라 아쉽죠....
이상 술취한 낚시꾼의 주저리주저리 였어요^^ -
- Lv.57 피플
- 05.11.06 20:30
- No.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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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0 백린(白麟)
- 05.11.06 20:33
- No.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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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0 백린(白麟)
- 05.11.06 20:43
- No.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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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68 불량회원
- 05.11.06 20:43
- N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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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0 백린(白麟)
- 05.11.06 20:48
- No.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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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아르나
- 05.11.06 20:51
- No.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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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0 백린(白麟)
- 05.11.06 20:53
- No.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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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아르나
- 05.11.06 21:06
- No.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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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0 백린(白麟)
- 05.11.06 21:10
- No.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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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아르나
- 05.11.06 21:40
- No.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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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0 백린(白麟)
- 05.11.06 21:46
- No. 27
煥舞(환무) / 우선 이 점을 말씀드리지요.
전 실증사학에 가깝습니다.
그런 입장에서는(그리고 현재는 이런 계통이 정파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실질적 증거가 없다면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우선, 한단고기가 의심이 되는 이유를 찾아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하군요.
- 참고로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군세기가 의심받는 이유는 굉장히 많습니다. 설령 그것이 정말 있었던 책이라고 해도, 지금 나돌아다니는 책들과는 다른 책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 한마디로, 일제의 역사 왜곡에 대응한다는 명분 하에 또 다른 날조를 한 후에 과거의 사서에서 이름만을 빌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는 겁니다.
- 심지어, 단군세기에는 단군조선기의 한민족의 숫자가 1억 5천만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그 당시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군요.)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책을 붙들고 있느니, 차라리 유적지를 찾아 나서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만. -
- Lv.9 이혁
- 05.11.06 22:00
- No. 28
12//저건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저렇다는 것이 아니라요...
모두//하나만 말씀 드리자면...
규원사화가 위서라고 전부 말씀하시는데...
1945년에 국립 중앙박물관은 고서점(개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에서 당시로서는 거금인 100원을 주고 고서적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당시에 100원이면 요즘은 아마 100만원이 넘을 겁니다...
그런 거금을 책 한권을 위해 투입한 거죠...
그 책이 바로 규원사화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진본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대출/열람 불가 품목으로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미쳤다고 위서를 100만원이나 주고 샀을까요?
전 왜 그랬는지 궁금하군요... -
- Lv.1 아르나
- 05.11.06 22:24
- No. 29
저도 눈에 보이는 지식을 우선하지만...
그런다해서...무조건 현존하는 문헌을 백프로 신뢰하진 않습니다
그런다해서 한단고기를 백프로 믿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소각되거나 유실된 분량에 비해
남아있는 자료가 넘 적은것도 있지만...추정되는 전체합산에서
남아있는 자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넘 미비하다는 잠
극히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가늠한다고 하는것도 무리지 않을까요?
위에 어느님처럼 타임머신을 타고가서 그당시 상황을 실황중계로 보여주지않는한 진실을 알순 없지 않을가 싶네요
님 말처럼 고분이나...유적지...찾아가서 밝히는 것 좋습니다
남아있는 문건에도 조작 되거나 외곡된 책일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네여
왜 우리는 무협지를 좋아 할까?
광활한 대륙을 놓코 벌이는 영웅들의 이야기에 왜 열광할까요..
대륙을 질타했던 선조들의 그 기질과..피가 우리몸에 흐르기때문이 아닐지? -
- Lv.53 저팔계6
- 05.11.07 10:38
- N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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