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이란 시스템의 매커니즘을 보면 말입니다.
투고-> 심사위원 평가-> 당선작 발표
대강 이렇습니다.
중고등학교 백일장도 저렇게 하고 각 신문사 신춘문예도 저렇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문피아 공모전을 살펴보면, 중간이 뭐가 하나 더 낍니다.
실시간 연재 -> 심사위원의 평가 및 연재 성적(추천, 조회, 선작) -> 당선작 발표
일단 실시간 연재입니다.
게다가 문피아 공모전은 심사위원진의 평가에 의해 당선작이 결정나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더 많이 보고, 추천을 더 많이 누르고, 선작을 더 많이 하는 작품이 뽑히는 공모전입니다. 제가 알기로 이런 방식은 ‘공모전’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못 되고 그저 ‘투표’라고 보여지네요.
심사위원들이 자체적으로 작품을 접수해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생 라이브로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호응도를 반영한다? 당연히 기존에 히트작을 냈던 작가들이 유리합니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도, 그건 지원자가 몰리는 것이지 독자가 몰리는 것은 아니기에 작품 간의 격차는 좁혀질 수가 없습니다. 결국 문피아 내부에서 이미 인지도와 실력을 검증받은 작가들이 더 유리한 조건에 놓여진 겁니다.
그렇다면 공모전에 참가할 ‘동등한 기회’만 주고, 똑같은 스타트 라인에서 출발할 ‘평등함’은 이미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100M 출발선에 우르르 몰려 있는데 누군 스플린터 자세 취하고 누군 자동차 시동 걸어놓은 꼴이죠.
저는 이번 공모전 요강을 대충 훑어보고 무슨 생각을 했냐면, 딱 ‘나는 가수다’의 문피아 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가수는 전문가 평가가 있긴 하지만 정작 순위를 결정짓는 것은 청중평가단이죠. 그런 건 공모전이 아니라 ‘경연’이기에 납득될 수 있는 매커니즘입니다.
그런데, 문피아 공모전은요?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소설을 발굴한다!는 취지라면 경험치가 부족한 아마추어의 글보단 저마다 히트작 하나씩 갖고 있는 프로 작가들을 서로 경합시켜서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 내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보여집니다.
기본적으로 상업화가 된 적이 없다면 어떤 글이든 참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공모전을 노리는 수백 수천 명의 아마추어 작가님들은 그냥 포기하시는 게 편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론상 이번 공모전은 이영도 작가님이 오셔서 신작 연재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독자 반응이 킹왕짱 먹어주는 공모전인데, 이영도 작가님이 상업화 하지 않은 따끈한 신작을 연재한다면 아마 문피아 터져버릴 정도로 독자들이 몰려들겠죠. 아, 그래도 고무림에서 시작된 문피아니까 무협소설 작가님들이 오시는 게 더 보기 좋겠군요. 사마달 님이나 용대운 님이 출사표 내밀면 어떨까요?
그런 공모전에 참여하실 분 계십니까? 적어도 평균 조회수 5천 밑으로는 감히 비벼볼 엄두조차 내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겁니다.
저는 차라리 이번 공모전을 두 갈래로 나누어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비교적 소액의 상금을 건 ‘실시간 익명연재’ 방식으로 아마추어 리그를 열고, 그리고 기성 작가를 위한 리그를 열었으면 훨씬 재밌었으리라 봅니다. 아무튼 말이 이래저래 길어졌는데, 제목에 뒤이어서 하고 싶은 말 딱 하나 적고 글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문피아 공모전은 전제부터가 잘못됐습니다.
문피아판 ‘나는 가수다’가 적당하겠네요. 분명히 그들만의 리그, 네임드 간의 배틀이 될 겁니다. 두 달간 아마추어들이 기를 쓰고 글을 올려도 절대 안 먹힙니다. 이렇게 신인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할 거라면, 불특정 다수를 전제로 한 ‘공모전’이란 말대신 특정 소수가 펼치는 ‘경연’이란 말을 써야 합니다. 제 1회 문피아배 작가 경연 말입니다.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번 공모전은 애초에 기성 작가를 확실하게 밀어주기 위한 공모전이지 아마추어따윈 안중에도 없는 공모전입니다. 그러니 이번 공모전에 귀가 솔깃해지셨을 아마추어 작가님들은 재빨리 포기하시고 쓰던 글이나 마저 쓰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애초에 공모전 상금 규모가 3억이라고 처음 들었을 때부터 저는 이게 보통의 공모전은 아니라고 단번에 직감했지만, 안 그러신 분들도 많은 것 같아서 말씀 올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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