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특유의 무술(武術).
본문
비슷한 말로서 국기(國技)가 있는데, 이 두 낱말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검술(劍術)·궁술(弓術)·태권(跆拳) 등은 국기라고 할 수도 있고, 국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굳이 구별을 한다면 국기는 다수의 서민이 공동으로 즐기는 것이지만, 국술은 일부 특수층이 연마하는 무술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무술을 갑오개혁 이전에는 무예(武藝)라고 하였는데, 그 무예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책이 바로 조선 정조(正祖) 때 편찬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이다. 이 책에는 무술이십사반(武術二十四般)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 본래의 무예인 무예 6기(技), 다시 이것을 발전시킨 무예 18기에다가 한국 고유의 무예 6기를 첨가한 것이다.
무예 6기는 장창(長槍)·당파()·낭선(狼)·쌍수도(雙手刀)·등패(藤牌)·곤봉(棍棒) 등이고, 18기는 이것들 외에 죽장창(竹長槍)·기창(旗槍)·예도(銳刀)·왜검(倭劍)·교전(交戰)·월도(月刀)·협도(挾刀)·쌍검(雙劍)·제독검(提督劍)·본국검(本國劍)·권법(拳法)·편곤(鞭棍) 등의 12기를 첨가한 것이다. 한국 고유의 6기는 기창·월도·쌍검·편곤·격구(擊毬)·원기(猿騎) 등이 있다. 한국 고유의 6기는 엄격하게 말하면 고유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무술인데, 고유 6기의 무술도 그 기본은 중국의 무술이며, 이것을 한국에서 취사선택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무술은 어느 것이나 우리 고유의 국술이라 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삼한(三韓)·삼국시대 이래 한국의 무술은 심산유곡이나 한적한 산사(山寺) 같은 곳에 숨어 살던 무술가들에 의해 독창적인 것이 개발되었고, 그것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문헌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대한국술원(大韓國術院)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 고유의 무술은 270여 기(技)에 3,068수(手)가 있다고 한다. 그 중 학생들에게 교습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평수법(平手法):온몸의 힘을 평수(손바닥)에 모아서, 이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급소(急所) 364혈(穴)을 치는 법이다. 이 법을 수련하는 데는 단전기법(丹田氣法)과 두견법(頭堅法) 등의 2가지가 있으며, 그 수(手)는 30가지가 있다.
② 검법(劍法):정검(正劍)·역검(逆劍)·단검쌍검(短劍雙劍)·장검쌍검(長劍雙劍) 등의 4가지 검법이 있는데, 이것은 가락국(駕洛國)의 쌍검무(雙劍舞)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역검은 신라 화랑도(花郞徒)에 의해 완성되어 전래한다고 하며, 단검쌍검은 역대 궁중의 궁녀들이 익힌 검법이고, 장검쌍검은 궁중을 호위하는 장졸들이 익힌 검법이라 한다.
③ 기합술(氣合術):인체에는 내공(內功)과 외공(外功)의 2가지 힘이 있다. 그 중 내공의 힘을 한 곳에 집중시킬 때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서산대사(西山大師)·사명당(泗溟堂) 등은 이와 같은 내공의 힘을 발휘한 역사적 인물들이다. 기합술에는 25종류가 있다고 한다.
④ 부채술:부채와 공격대상과의 각도를 이용하여 몸을 피하는 법인데, 30수가 있다고 한다. 항상 적의 혈맥을 공격하는데, 부채가 부딪치는 곳은 인체의 급소여야 한다. 자그마한 부채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체중에 비례하는 중량이 작용한다. 고려시대 선비들이 궁중에서 불의의 습격에 대비하여 익혔던 법이다.
⑤ 중대법(衆對法):적에게 완전 포위되었을 때, 허점을 발견하여 급소에 돌입함으로써 포위를 뚫고 나오는 법을 말한다.
⑥ 단장술(短杖術):손에 가지고 있는 지팡이로써 적의 공격을 막는 방법이다. 인체에는 364곳의 급소가 있는데, 공격해 오는 적의 급소를 찌르거나 관절을 단장으로 걸어 적을 쓰러뜨린다.
⑦ 검무형(劍舞型):칼춤이라고 하는 것인데, 쌍검으로 정검·역검 등 각종 검법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형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검무의 형을 익힘으로써 여러 가지 검법의 진수를 터득할 수 있으며, 또한 기본적인 4가지 검무형에 무한한 변화를 주어 묘기를 백출하게 한다. 검무는 가락국이 그 원조(元祖)라고 하며, 삼국시대의 명장들은 모두 검무형을 즐겨 익혔다고 한다.
국술에는 이 밖에도 악권법(握拳法)·종견법(踵堅法)·지압술(指壓術)·포박술(捕縛術)·격파술(擊破術)·하당술(霞當術)·인신차술(引身車術)·진혼법(鎭魂法)·방원기(方圓技)·철사장법(鐵沙掌法)·매화춘형(梅花春型)·요음술(妖音術)·묘산법(廟算法)·투석술(投石術)·운비형(雲飛型)·은신술(隱身術)·금강력(金剛力)·철화술(鐵火術) 등이 있다고 한다.
국술은 삼한·삼국 시대 경우처럼 여러 작은 나라가 서로 싸울 때, 더구나 무기가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기에 있어서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필요성이 희박해졌다. 고려·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백병전(白兵戰)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국술이 중요시되었다.
오늘날처럼 과학병기가 빠른 속도로 발달한 시대에 있어서는 국술의 전술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고, 다만 전투원 개개인의 체력을 연마하는 데 기여하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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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술은 한국 전통무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로부터 외세의 침략이 많았던 한반도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무술이었다.
한국의 전통무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궁중무술, 불교무술, 사도무술이 그것인데 궁중무술은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왕가를 호위하기 위해서 전투에 필요한 호국무술의 형태로 전수된 무술이다.
불가에서는 도를 닦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무술을 익혔는데 이를 계승한 것이 불교무술이다.
사도무술은 무인가문이나 사대부가문에서 전통적으로 전수되어온 무술을 말한다.
이 세가지 전통무술을 되살리기 위해 무인가문의 후손인 서인혁 총재는 전국의 이름난 사찰과 종갓집을 찾아다니며 낡은 무술책과 씨름하기를 10여년, 드디어 1958년 이전의 한국 전통무술을 집대성한 '국술'을 선보이게 된다.
국술은 이처럼 한국의 전통무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맨손 무술과 무기술등 그 기술이 무려 270기, 3,608수에 이른다.
1961년에 정식으로 무술단체로 인정을 받은 국술원은 여러 무술 계통의 인사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한국전통무술의 역사와 인식을 바로 잡는 데에 힘썼다.
서씨 가문으로 내려오는 5권의 책이 있는데 그것들은 유술, 권술, 유권술, 활법과 혈법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는 저서들이다. 서인혁 총재 나이 22세에 자칭 국사님이라 하여 무술의 스승임을 밝혔다. 국술원은 어느 한 무술단체를 떠나 한국고유전통무술의 본이 되는 체계적인 무술 그 자체인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선보인 국술은 순식간에 전국에 퍼졌고 서총재로부터 크고 작은 것을 배워 나간 무술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 몇몇은 현재 다른 한국 무술단체의 장이며 고수인 점을 볼 때 그의 영향이 무술사회에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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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면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만든 무술,검술 등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의 무술, 검술을 좀 더 발전시킨형태가 많습니다. 일제시대만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무예가 얼마나 될지 상상이 안갑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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