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여주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저는 어떤 소설이든 일단 잡고 한 권을 읽으면 끝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실재로 읽은 여주물이 있다는 점이죠.
여자 주인공에 대한 기피로 많은 사람들이 ‘남자가 쓰는 여자는 여자의 심리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라고 하는데 그건 그냥 핑계거립니다. 어차피 남자들 중에 실재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다가 정말 이해하지 못할 여자 심리에는 도리어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경우도 많죠. 다들 인터넷에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라는 식의 유머는 많이 보셨을테니까 이해하실겁니다.
여자 주인공을 기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겁니다. 많은 작가들이 여자 주인공을 표현하는데 있어 ‘내가 이해하지 못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여자'를 인물로 집어넣는다는 점입니다. 실재 여자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니까, 대충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에 실재 여자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섞어서……
물론 방금과 같은 케이스는 그냥 여자 캐릭터 중에서는 아주 흔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대중이 소설을 읽을 때 신경쓰는 포커스는 ’주인공'이죠. 주인공 보다 더 주인공 같은 조연이 있는 건 괜찮지만 그냥 보통 조연보다 더 존재감 없고 비중이 적은 주인공은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읽은 여자 주인공들 중 상당수가 일개 조연만도 못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죠. 작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고 썼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1인칭 관찰자보다 못한 느낌이랄까.
즉, (저는 개인적으로 여주물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만) 여주물을 쓰는 작가들 대부분이 ‘여자 주인공’이라는 요소에 과하게 집착하게 되어서 주인공이 하나의 캐릭터로 보여지지 않는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쌓여서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아래 있는 글 들 중 어떤 분이 슬레이어즈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저는 슬레이어즈의 대단함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주인공을 하나의 캐릭터로 보여주었다.’ 여자 주인공을 쓴다는 것에 얽매여서 거기에 집착하다가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상실되지 않고 그냥 어떤 캐릭터의 성별이 여자였을 뿐인 점이 성공요인이죠.
남자 작가이지만 주인공이 여자인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해서 굳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실재 여자 작가가 쓴 전형적인 여자주인공도 남성 독자들에겐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거든요. 그냥 어떤 캐릭터를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서 집중하는 쪽이 건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좋고 재밌는 글도 한정되어 있는데 당장 시장에 나오는 글은 엄청나게 많으니 ‘주인공이 여자냐 남자냐'에서 부터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이해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쪽이 경제적이니까요.
뭐, 그걸 자랑스럽게 떠들면서 ’너네도 재미없는 여주물 같은거 보지마'라는 식으로 찍찍 뱉는 종자들은 문제가 있으니 까야 제맛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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