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되고 싶었던 한 국문학도의 최후는 조용했습니다. 진리의 상아탑은 고고히, 주인공과 같은 이름 없는 학자들의 좌절과 절망 위에 서 있지요. 최후의 순간 악마처럼 나타난 남자는 주인공을 어린 시절로 돌려보냅니다.
정확히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주인공을 통해 무언가의 변혁을 꿈꾸는 듯 합니다. 과연 신이라고도 악마라고도 할 수 있을 저 남자가 내민 계약서의 숨겨진 조항은 뭘까요? 그가 짜는 판은 어디까지일까요?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은 주인공의 차분하지만 비범한 학창시절을 같이 즐깁시다.
회귀물이 많이 흥행하고 있죠?
몇 년 전부터 회귀물이라는 말이 정착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아주 포텐이 제대로 터졌나봅니다. 멸망, 회귀 키워드가 포함된 작품이 한 두 개가 아니지요.
필력은 차치하고, 개인적으로 일상 계통 회귀물을 볼 때 도저히 못 견디겠는게 두 가지 있습니다. 말투와 주인공 찬양입니다. 오오 주인공 님 환생하시니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더라! 뭐 이런... 사실 환생이나 회귀물에서 생전의 정보로 이득을 보는 정도라면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발상입니다만 주인공의 비범하신 행보에 “으아니 고딩이 이런! 이건 천재야! 대단해! 난 업계 현역으로 나름대로 수십년 짬밥을 먹었지만 최소 십년 후에 경력을 시작해서 같은 업계에서 한 이십년 굴러먹다가 환생한 놈이 무조건 나보다 우월해!!” ...좀 과장을 많이 보태긴 했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주인공 찬양이 이어지면 좀, 매우, 많이 오글거리지 않나요?
당연히 뉴 라이프도 생전의 지식으로 이익을 봅니다. 뭐 금전적 이익을 보고 생전에 알았던 친구의 비밀로 뭐 뜬금없이 학교의 아이돌과 청춘 드라마를 찍고 그런 건 아니고, “난 이렇게 살았는데 이건 좀 아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살자!” 정도의 개과천선과 오랜 세월 학자로써 단련한 정신이 주인공의 무기입니다.
너무 오글거리지 않으면서도 뭔가 좀 우리가 회귀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충족시켜주는 선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살짝 언급한 말투. 비단 환생물 뿐만 아니라 현대물을 볼 때 제가 가장 못 견디겠는 것 중 하나가 무협풍 말투입니다. 가끔, 아니 은근히 많은 소설이 현대인이 쓰기엔 지나치게 장엄하고 지나치게 격식...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대착오적인 말투를 많이 씁니다. “설마 네가 한국의 시키인 것이냐?” 뭐 이런 말투요.
이런 소소한 것들이 툭툭 몰입을 깨는데 저는 그런 불협화음을 지독히도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뉴 라이프는 그런 음, 제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유리창을 손톱으로 박박 긁는 것 같은 불협화음이 없습니다.
현대물 답게 일상물 답게, 그러면서도 학자가 회귀하는 글 답게 적당히 톤 다운된 깔끔함이 인상적입니다.
아 연재도 성실합니다!
음, 그냥 추천글을 쓸 때도 엔딩은 언제나 어렵군요. 여기까지 읽었고 좀 땡긴다면 재밌게 보러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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