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나니 벌에 대한 이야기로 구름도시 이야기의 소개를 시작하고 싶네요. 어쨌든, 이 이야기는 리차드 도킨스의 글을 인용한 이현우 씨의 글에서 봤던 거 같습니다.
먹이를 옮기는 나나니벌. 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나나니 벌은 벌레를 사냥해 마취 시킨 후 그 벌레를 숙주 삼아 알을 낳는 그런 벌의 일종입니다. 이 벌은 자신의 알을 심은 먹이를 밖에 놓아둔 채 자기 집(구덩이) 안으로 들어가서 이상이 없는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먹이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 행동 패턴입니다.
1. 먹이를 구한다.
2. 벌레를 입구에 가져다 놓는다.
3. 구덩이를 확인한다.
4. 벌레를 구덩이로 가져간다.
이 4가지가 나나니벌의 행동 패턴이죠.
그래서 말벌이 구덩이에 들어가 있는 동안 실험자가 먹이를 원래 놓아둔 곳에서 몇 센티미터 정도 떼어놓으면 재미 있는 일이 일어나죠. 벌레를 옆으로 옮길 경우 말벌의 모든 행동 패턴은 리셋되버린다는 겁니다.
인간과 같은 뛰어난 지능이 없는 나나니 벌은 3의 과정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먹이를 굴 입구까지 가져가 집 안을 다시 조사하는 것이죠.
먹이는 오로지 입구에 있어야 하니까요!
실험자가 싫증이 나서 그만둘 때까지 그 짓을 40회나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마치 프로그램의 초기 단계로 다시 돌아가는 자동 세탁기처럼 말이죠.
먹이가 40번이나 옮겨지는 건 확실히 미스테리한 일이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대응 메뉴얼을 늘 생각하며 사는 건 사실 일상에 있어서 굉장한 자원 낭비겠죠. 하지만, 그러한 우리 일상의 불완전성이야 말로 오히려 나를 둘러싼 바로 이 구름 같은 세상의 작동 조건일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밖에 나가려는데 늘 놓아두었던 곳에 지갑이 없더군요. 그거 하나로 그날의 제 하루가 완전히 파괴당하고 말았죠. 갑자기 내 물건을 함부로 하는 어머님께 화가 났으며 괜히 친구에게 짜증을 내고... 나나니벌처럼 같은 곳을 40번이나 찾아보았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갑은 제 바지 호주머니 속에 있더군요.
전 인간인지라 언제나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냉철한 이성적 판단 하에서 합리적이고 슬기로운 판단을 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전 사실 나나니 벌과 별 다를 것이 없더군요. 사실 우리는 충분히 똑똑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남들은 훨씬 더 똑똑하며 너무 복잡하고 많은 일들이 서로 얽히고 섥혀 터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적어도 저는 스스로 자동 세탁기가 되고자 세상에 대해 눈을 감은 것들이 정말 많더군요.
그리고 우리는 세탁기가 고장났을 때에만 세탁기에 관심을 가지죠. ‘나’라는 세탁기를 오작동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소설.
‘구름도시 이야기’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다행스럽게도 구름 도시 이야기에는 벌레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예쁜 고양이와 평범한 인간들, 그리고 고양이 같은 주인공들과 주인공 같은 고양이들의 재미 있고 스릴 있으며 생각보다 무섭고 그럼에도 다음 편이 꼭 보고 싶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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