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자전님과 대조되는 글이지만, 결코 분란을 바라는 게 아닌 또 다른 의견이 있구나 + 약간의 걱정만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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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목적 = 높은 선작’이 되는 건 문피아 같은 연재 사이트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란 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문피아가 프로 작가 지망생 혹은 프로 작가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군요.
취미를 위해 글을 쓰는 분들을 이해를 못 하신다고 하셨고 포함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자전님의 글은 제 눈엔 상당히 위험해 보입니다.
아래 자전님은 조회수, 선작, 순위, 추천을 받지 못한 글은 과연 좋은 글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십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의 전제에는 심각한 입장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걸 언급하지 않으신다면 저런 주장은 비약이 되죠.
왜냐하면 좋은 글이란 자전님의 기준이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상품성 있는 글만이 좋은 글은 아니죠.
과연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그대로 베껴서 문피아에 올리면 베스트가 될까요? 보르헤스의 단편집을 피에르 메나르가 돈키호테를 베껴 쓴 식으로 그대로 문피아에 올리면 과연 선작이 얼마나 될까요?
x아x라는 연재사이트에 누군가 반지의 제왕을 그대로 베껴 올린 사례가 있었죠. 독자들의 반응은 처참했던 걸로 압니다.
여기 베스트 몇 개만 찍어봐도 독자가 뭘 원하는 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글 = 흥행하는 글. 그건 경계해야 할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위 언급한 작품들의 작품성이 문피아의 소설들보다 훨씬 높다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추구하는 목적이 다른 것이니까요. 다만 상품성, 대중성만을 목적으로 소설이 쓰여진다면 언젠가 한국 장르 문학의 서재에는 3~40권 씨리즈의 상품형 소설만이 가득 차게 되겠죠. 뭐 이미 현실이 그렇던가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에 순응할지 다른 길을 찾아볼 지는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겠죠.
다른 이유는 선작수 문화 자체의 폐해입니다. 우리는 늘 수치로 무엇인가를 통계화하고 순위 메기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죠.
요즘 한국 온라인 게임들을 살펴보시면, 정말 거기서도 먹고 살기 어렵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죠. 한국의 컨텐츠들은 죄다 그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사회의 논리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상품성에 기초한 순위 메기기를 자발적으로 원하죠. 그러면서 슬퍼합니다. 그리고 힐링을 위해 순위 매기는 컨텐츠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더 상처입죠. 무한 루프입니다.
그게 어디 사람 삶이냐고 따지기 이전에 일단 우리가 쓰는 게 뭔지 생각해봅시다. 장르든 나발이든 일단 소설의 형식을 갖췄죠. 기본 분류는 문학입니다. 게다가 ‘환상’입니다. 인간이 가장 자유로워야 할 환상을 소재로 하는 문학의 영역에서까지 꼭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현실 순응식 치유글 욕망 폭발식 자기 만족글도 좋습니다. 그걸 좋아하고 말고는 甲독자의 마음이겠죠. 하지만, 최소한 그렇지 않은 글들을 위한 여지는 남겨줬으면 합니다.
너는 선작 1만개니까 좋은 글, 나는 선작 10개니까 못된 글. 서글픕니다.
물론 프로 작가가 되어서 글로만 먹고 살겠다는 분들은 자전님의 경고가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런 분들은 시장을 잘 연구하고 열심히 홍보해서 잘 팔리는 상품을 쓰시면 됩니다.
반면 저 같은 독자는 제가 원하는 재미의 소설이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직접 쓰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철학,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역사 등에 대해 수천 권의 책을 읽어왔고 제가 좋아하는 재미는 분명히 대중적인 재미 구조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니 제가 원하는 책들은 시장성이 없을 테고 아무도 안 쓸 것이니까요. 제 재미를 공감해 줄 선작 1개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1명의 독자만으로도 소설의 소통은 완성되니까요. 그래서 연재 사이트에 와서 글을 올리고 있는 겁니다.
홍보 시스템은 한국 연재 사이트들의 관행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문피아 운영진이 되어 본 적은 없지만, 독자의 취향과 글의 성격을 잘 대표하는 분류 시스템만 연구해도 이런 홍보와 선작 문화는 별로 필요없어 질 것 같은데... 아마 바빠서 그렇게 못 하시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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