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수의 역설, 아쳐스 패러독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역설, 패러독스인가 하면...
화살은 근거리일수록 관통력이 떨어지는 특이한 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서양 동양을 불구하고 모든 활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활에서 화살이 발사되면, 초기 속도와 에너지 자체는 최고입니다만 화살촉이 정면을 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발사되면 에너지 전달 방식의 문제로 화살이 휘면서 발사됩니다. 뒤에서 강한 힘으로 밀면서 화살이 휘었다가 반동으로 다시 역방향으로 휘는 진동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화살은 약 15미터 정도를 물결치듯 요동하면서 발사됩니다. 이런 현상 때문에 화살은 근거리에서 적중할 경우, 관통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궁수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가까울 수록 강력해야 정상인데, 역으로 살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활은 직사보다는 곡사를 사용하는 무기가 됩니다. 근거리에서 살상력이 떨어지는 묘한 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편전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일반적인 화살과는 다릅니다.
짧기 때문에 궁수의 역설 현상이 일반 화살보다 현저히 적습니다.
반면 화살의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같은 속도에서 갖는 운동 에너지가 작고, 바람을 타기 쉽습니다.
활에서 발사될 때는 빠르지만, 빠른 만큼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으며 공기의 저항을 일반 화살보다 그리 작게 받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편전의 관통력은 화살의 관통력보다 빠르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같은 속도에서 화살과 편전의 관통력은 무게에 비례하게 됩니다. 화살보다 현저히 빠를 때는 편전의 관통력이 높지만, 더 빠르게 실속하기 때문에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궁수의 역설 때문에, 화살은 지근 거리를 노리지 못하며 수십미터 이상의 거리를 노리게 됩니다. 그래서 화살들은 기본적으로 곡사를 하게 됩니다. 화살 자체의 무게도 있기 때문에 비스듬하게 떨어지면서도 강한 관통력을 보여주게 되지요.
편전은 궁수의 역설이 줄기 때문에 화살보다 현저히 가까운 거리를 노릴 수 있습니다.
통아는 화살이 올바로 날아가도록 해주는 도구입니다만, 화살을 강하게 잡아주면 잡아주는 만큼 마찰로 인한 운동에너지를 빼앗게 됩니다. 그래서 통아는 편전을 완벽하게 제어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활에서 떠나는 순간 편전은 화살보다 좀 더 제어 불능이 되며, 운이 나쁘면 통아에서 튕겨 나가서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컨트롤 나쁜 강속구 투수의 강속구 같은 것일까요.
화살촉과 화살깃의 간격이 좁아서, 화살 깃이 화살을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효과도 떨어지는 편입니다. 일부 편전은 아예 화살 깃이 없기도 하고 말이지요.
문제는 교전 거리입니다.
조총은 활에 비하면 연사력, 사정거리 모두에서 떨어집니다만...
이상적인 교전 거리, 창칼이 닿지 않는 2-3미터에서 30미터 안쪽에서 한발을 쏘고 교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리는 일반 화살의 맹점에 해당됩니다.
방패나 엄폐물을 이용해서 교전거리를 좁히다가, 조총의 교전 거리에서 일제 사격을 하고, 창칼로 전환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초기 총기가 나왔을 때의 전투 방법이었습니다.
의외로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만, 살상력 등에서 가장 뛰어난 교전거리였으며, 이는 활이 긴 사정거리에도 불구하고 살상력이 아주 높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십 미터 밖에서 탄막을 치는 형태로 쏴야 하는 활과 수 미터에서 일이십 미터 안에서 조준해서 직사하는 형태의 총기와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가 보여준 근거리 전투는 궁수의 역설을 생각하면 리얼리티가 없거나, 엘프만의 신비한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편전은 조총과 대등한 교전거리에서 적에게 정확한 한방을 먹일 수 있는 좋은 무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사력이 떨어져서 레골라스처럼 난무를 할 수는 없지만...
몸을 드러내고 돌격해오는 적에게 꽤 정확하게 날려서 높은 확률로 적을 제거할 수 있는 전법이 가능해 집니다.
일반 화살보다 교전거리가 짧은만큼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명중률과 살상률은 높아진다고 봐야겠지요.
가볍고 바람을 타기 쉽다는 점을 생각하면...
순풍(뒷바람)을 받을 경우, 도달거리는 일반 활보다 훨씬 길 겁니다. 골프공도 바람만 잘타면 멀리 날아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도달거리가 멀다는 것만으로 편전이 일반 화살보다 원거리에서 유효한 무기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일 수 있습니다.
곡사를 주로 하면서 원거리에서 탄막을 치는 형태로 교전하는 활이라는 병기에, 직사 능력을 살려 근중거리에서 확실하게 유효타를 가할 수 있는 병기로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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