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출판사-대여점 체제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성이었습니다. 대중성이 무엇인지 세세히 정의를 내리지 않아도 모두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작품에 그대로 투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우선 출판사가 막습니다. 제가 첫 작품을 출간하고 나서 다음 작품으로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무려 다섯 작품이었습니다. 전 이미 차기작 계약이 되어 있던 터라 두 권 분량의 원고에 대해 수락만 하면 바로 출간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대중적'이란 잣대로 작품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해 고치길 원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을 그렇게 무려 일곱 번이나 고쳐 출간하고도 쫄딱 망한 경험이 있기에 출간을 안 하면 안 했지 편집팀이 휘두르는 칼에 맞아 마음 다치고 작품마저 다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상태인 터라 수정을 거부하고 출간을 포기했습니다.
아마도 이게 저만의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출간 작가라면 한두 번씩은 다 겪어 본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글로 먹고 산지 몇 년쯤 되다 보니 출판사의 이러한 행동이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대여점에서는 일정 횟수 이상 대여가 되지 않으면 바로 반품합니다. 즉, 그 작품이 아무리 잘 쓴 작품이라 하더라도 대중적이지 못하고 몇몇 사람에게만 명작으로 우러름 받으면 곧장 반품의 운명을 맞이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물론 잘 쓰기도 하고 대중적이기까지 하면 가장 좋지만, 아시다시피 그런 작품은 참 드물죠.
대여점에서 입고의 기준이 보통 10회 이상 대여에 연독률 90%이상이라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은 매니아 5명이 2권을 다섯 번씩 대여해 10회를 대여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반품 작품이기 때문에 출판사와 작가에 돌아가는 수익은 0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어느 출판사가 감히 대중성을 무시하고 작품을 쓰도록 작가를 놔두겠습니까. 예전에는 작품이 한두 개 정도인 초보작가에 한해 작품에 대해 재단을 했지만, 요즘에는 다작을 한 작가마저도 작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다고 하더군요. (선배작가의 말입니다.)
제 경우 대여점 시장에서 일찌감치 밀려나 유료 연재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대로 쓰고 싶은데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하니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터전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그 어느 작가보다 유료 연재를 일찍 시작했고, 또 다양하게 접해 보았습니다. 물론 조아라에서였지만, 작가키우기 프로젝트, 프라이드, 웹노벨, 노블레스, 프리미엄까지. 거의 안 해 본 방식이 없다시피 했죠. 삼 년 넘게 유료 연재를 하다 보니 대여점-출판사 시스템이 눈에 들어오듯 유료 연재 시스템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출판사-대여점 시스템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자기만의 글을 써도 충분히 먹고 산다.'입니다. 아까 설명드리면서 매니아 5명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던 것에 비해 유료 연재는 곧바로 작가의 수입으로 이어지니까요.
저처럼 글 못쓰는 작가도, 장르 출판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요즘 트렌드가 어떤지 몰라도, 그냥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 대로 쓰다 보면 돈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장르 문학이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획일화된 소재, 트렌드에서 벗어난 작품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책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유료 연재 시스템 하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대중성은 중요합니다. 대중성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대중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다양성이라 생각합니다. 백인백색이라고 백 명이 다 생각이 제각각인데 어찌 같은 것만 좋아하겠습니까? 그동안 대중성에 희생된 다양성이 되살아날 때야 말로 장르문학의 부흥이 이루어지는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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