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따지자면 후자의 경우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하는 전자의 경우와 달리 이 소설은 오직 제목과 작품소개 때문에 제대로 읽힐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베스트 100으로 선정되면서 드디어 읽힐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는 우연찮게도 이 소설을 읽을 기회를 붙잡았고 제목과 작품소개에 번민하다가 딱 3화까지 읽어보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달려들었다.
수많은 실패 경험으로 쌓아올린 내 선구안은 단 3화만에 이 소설이 시대를 선도하는 명작이 되지 못하지만 명작의 모듬 요소는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수작임을 금세 깨달았다.
첫째로 이 소설은 다양한 영웅전기와 신화소를 잘 섞어 이 소설만의 새로운 신화로 만들어냈다. 주인공은 신이지만 힘만 믿고 날뛰는 야만인이 아니며 언어의 신이지만 언령이나 용언 같은 마법같은 일을 일궈내지 않고 개연성이 충분하게 시의적절한 능력사용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야기 전개가 일방적이지 않으며 보는 이에게 "이 위기를 어떻게 해쳐 나갈 것인가?"라는 재미를 준다.
둘째로 이 소설의 문장력은 매우 수준급이다. 수많은 소설들 중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그 문장이 매끄러워 잘 읽혀야 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단 한 번도 오탈자나 비문으로 불편하지 않았다. 취미로나마 글을 쓰는 내가 오탈자와 비문의 감수성에 대해서는 지식인들과 비견되지 않을까 싶은데도 매우 자연스럽게 읽혔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전형적인 영웅전기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영웅전기란 탄생-위기-극복-승천의 구조를 가진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의 구조를 가지지만 그렇다고 헤라클레스의 전설과 트로이 전쟁을 읽고서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은 남자가 있겠는가? 영웅전기는 몇 번을 읽어도 재밌다. 그렇기에 우리는 장르소설을 쓰고 읽는다. 이 소설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 가장 충실하다.
이상으로 이 소설을 추천하는 이유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봤다. 어디까지나 나 개인이 흥미진진하게 읽었을 뿐이므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다. 그러나 영웅전기의 구조를 철저하게 지키는 이 소설에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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