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빙의물은 꽤 흔한 클리셰입니다. 많은 소설의 주인공들이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 속에서 고인물의 정보를 한껏 활용하여 더 좋은 엔딩을 향해 나아가곤 합니다. 이러한 장르에서 베이스가 되는 게임들은 스토리 기반 게임이거나, 발생하는 이벤트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세세한 것들을 전부 기억하는 고인물 주인공이 미래의 정보를 바탕으로 뼛속까지 다 뽑아 먹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망겜에 갇힌 고인물의 배경이 되는 게임은 로그라이크입니다. 로그라이크의 특징 중 주요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던전 구조나 아이템, NPC 등 거의 모든 요소들이 매 게임마다 랜덤하게 생성된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캐릭터가 죽을 경우 그냥 삭제되어 버리기에 이전에 아무리 열심히 키워 왔든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키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태생적으로 운빨좆망겜일 수밖에 없는 장르입니다. 그러니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미래의 정보도, 열심히 올려놓은 스펙을 활용할 방법도 없습니다. 어쩌다 죽어버리면 남는 거 없이 그야말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고인물입니다. 아무리 운빨의 비중이 큰 게임이라 하더라도 100년 가까이 파고든다면 실력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 변수들이 랜덤하게 생성된다곤 하나, 결국은 그 역시도 일정한 법칙 아래에서 생성되는 무작위입니다. 이러한 바탕 아래, 주인공은 여러 가지 정황 증거들을 사용하여 현재 상황이 어떤 변수들로 구성된 것인지 유추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저는 이런 부분들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지 공략집을 펴두고 게임을 하는 느낌을 주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아, 얘 진짜 고였구나’ 하는 느낌을 확실히 전달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죽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로그라이크 특성 상 게임에 들어오기 전까지 딱히 운동을 한 것 같진 않은 주인공은 초반 스탯마저 썩 좋은 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없으면 없는 데로 어떻게든 컨트롤을 해가며 진행해 나갑니다. 고인물이니까요. 이러한 묘사들을 과하지 않게, 핍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표현하되 그렇다고 고인물스러움을 잃지는 않게끔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진행해 나간다는 점도 상당히 좋은 부분이었습니다.
설정 상 플레이어들은 미궁에 갇힌 ‘유배자’라고 불리며 탈출을 위해 끊임없이 클리어를 시도합니다. 더군다나 100년의 시간제한마저 있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97년을 내리 클리어를 시도하고 있는 고인물 중 고인물입니다. 그 탓인지 이러한 제반 상황을 설명하는 처음 몇 화는 그리 가벼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클리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화부터는 의외로 또 그렇게 무거운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마이페이스로 분위기를 살려주는 히로인의 합류 덕분도 있을 테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에서조차 종종 드러나는 주인공의 빠요엔스러움 덕택도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작가님의 필력이 좋으신 편이라, 읽기에 그리 부담감이 없었습니다. 너무 가볍진 않은, 적당한 분위기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분명히 취향에 맞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랬거든요. 추천글을 쓰는 현재 14화까지 올라온 파릇파릇한 작품입니다만, 개인적으로 포텐이 꽤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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