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노제 사회인 제정 러시아를 개혁한다고?
제정 러시아를 무대로 제대로 된 대역물을 쓰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극소수가 토지를 지배하고 농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농노제 사회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단 농노 혹은 소작민들이 왜 그렇게 사는지 잘 이해가 안됩니다.
단합해 귀족이나 영주, 지주를 몰아내면 될 텐데.. 왜 그러고 사는 걸까? 이 의문을 푸는 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다행히 예전 사회를 묘사한 다양한 문서, 그리고 폐쇄된 농촌공동체를 방문한 외부인의 기록 덕분에 어느 정도 묘사 가능합니다. 중세 장원이나 폐쇄된 농촌공동체에서 관찰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안전제일주의'였다고 합니다. 생산의 효율이 개선되거나, 혹은 자신의 삶의 여건이 개선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기에 변화를 매우 싫어하게 된다는 겁니다. 자칫해서 새로운 농법을 사용했다 망하면, 지주 혹은 영주에게 식량 빼앗긴 후에 굶어죽는 길 밖에 없었기 때문이겠죠.
제정 러시아뿐만 아니라 멕시코의 산골 마을 사람들도 누군가가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켜 마을의 안정을 저해하려 들 경우,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제재를 가했다고 합니다. 소문, 험담, 비방, 인신공격, 그리고 물리적 상해가 총동원됩니다. 따라서 부자들은 자신이 부유하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거나, 더 나아가 힘들게 모은 재산을 모두 소비해버리는 식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그 결과 부자들은 다른 이들처럼 가난해지고, 마을은 안정을 찾게 됩니다. 따라서 농민들이 토지에 속박된 사회는 '빈곤의 악순환'에 종종 빠져들게 됩니다. 제정 러시아가 크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연전연패한 이유가 다 있는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떤게 있을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변에 도시가 생기는 겁니다. 교역의 중심지가 생기면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 판매할 길이 생기고, 또 마을을 벗어나 이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제정 러시아 사회에서는 이게 불가능했습니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거대 도시들은 농촌으로부터 너무나 먼 곳에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가까운 도시가 걸어서 열흘 거리인데, 상업이 발달할 수 없습니다.
결국 러시아 사회의 정체와 억압은 외부의 힘. 즉 새로운 사상을 가진 혁명세력에 의해 부서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엄청난 생산성의 혁신이 시작되었죠. 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리던 농민들에게 새로운 농기계와 화학비료, 그리고 인센티브가 주어지자 가파른 경제성장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소련이 미국보다 더 빠른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또 일부는 역전되었다고까지 주장했죠(그리고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ㅎㅎ).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련이 '수용소 군도'를 만든 악마같은 집단이라는 우리의 인식을 넘어선..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면에서 '페트로그라드의 한국인'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스탈린이 만든 철혈 독재 수용소 국가말고, 민주적인 국가주도 개혁은 불가능했는가? 특히 스탈린이 아닌 또 다른 지도자, 트로츠키였다면 혹시 실낱같은 가능성은 없을까? 러시아 뿐만 아니라, 1919년 독일 혁명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여러 상상을 소설이라는 장에서 실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제 초반에 불과하지만, 일단 20세기 초반 유럽 상황에 대한 탄탄한 조사가 뒷받침된 것 같아서.. 유료화까지 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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