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회사물 #저승 #독특한소재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어떤 삶을 살았건 그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절대명제입니다. 행복했던 웃음도, 숭고한 신념도, 서글픈 아픔도 죽음 앞에서는 무차별하게 뒤섞여져 사라질 뿐이지요.
그렇게 사라져가는 파편들을 죽기 직전에 마주하는 걸 보통은 주마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사람이 죽고 난 이후에는 영혼이 되며, 또한 저승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무탈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덤덤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원통한 삶을 살았거나, 뜻밖의 죽음을 맞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죽음 앞에서 태연하긴 힘들겁니다. 어쩌면 죽음을 부정하고, 저승차사들을 피해 저승으로 가지 않으려 도망갈 수도 있겠지요.
이 작품, <저승 브금 제작소>는 여기에 아주 재밌는 발상을 덧붙입니다.
망자가 죽기 직전 마주하게 되는 주마등이 사실은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 이라면 어떨까요?
망자의 일생을 밝은면만을 조명해 영상을 편집해내고, 거기에 적절한 배경음악을 넣어 망자에게 보여준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죽음을 납득할 수 있겠지요. 이른바 망자가 저승차사들의 인도를 거부하는 ‘사고’의 빈도를 줄일 수 있는 수단 또한 될겁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 작품에서 저승이란 하나의 거대한 서비스 산업으로 묘사됩니다.
저승으로 가게 된 망자들은 환생을 하기 위해 저승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망자들에 대한 정보를 종합하는 행정팀도 있고, 망자들을 직접 모시러가는 차사팀도 있으며, 망자들을 설득할 주마등을 만드는 영상팀과 음향팀도 있습니다.
그들의 고민은 이승의 직장인들의 고민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 고객이라 볼 수 있는 망자들에게 좋은 평점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기도 하고, 신입이 현장에 나갈 때마다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 ‘승’ 또한 주마등의 영상에 어울리는 음향을 만들며 사고가 생기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평범한 직장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속한 부서에 할당되는 망자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다 만만하지 않습니다.
타살을 당한 여자도 있고, 사고사로 죽은 몇 개월 되지 않은 아이도 있으며, 그 아이를 껴안고 죽은 친모까지. 주인공은 그들의 삶을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해 그들을 위로할만한 음향을 뽑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올바른 음향을 만들어 그들에게서 조금이라도 삶의 긍정적인 측면을 끄집어내는 것. 주인공이 하는 일은 그런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작품 내에서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여자는 가까운 사람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생각치도 못한 죽음이었기에 삶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합니다.
계속되는 권유에도 저승으로 가는 걸 거부하지만, 우연하게 다시 재생된 주마등의 음향소리를 듣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됩니다. 그 음악 속에는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담겨있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고 재밌는 소재였습니다. 저승에서의 생활을 평범한 직장생활로 묘사하고, 에피소드마다 죽은 사람들이 가진 사연을 소개하며 풀어나가는 전개도 꽤나 좋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이 소설의 주된 소재인 ‘음향’과 죽은 사람들의 사연이 내밀하게 엮이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사연을 나열하고, 저승차사들이 설득하는 장면이 아니라 음악이 핵심이 됐다면 좋았을텐데. 첫 번째 여자의 사연 또한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이라는데 그치지 않고, 좀 더 의미있는 기억, 그리고 그 추억과 연관된 음악을 엮어내는걸 보여줬다면 망자가 왜 음악을 듣고 감화됐는지 확실하게 납득이 가지 않았을까요? 다른 사연들 또한 여러 사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게 아니라, 한 사람의 추억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음악과 엮어내면 더 감동적인 전개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이곳저곳 배치한 소소한 유머들 또한 죽음이라는 주제와 잘 엮여 너무 무겁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물, 직장생활물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부담없이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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