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는 빙의물입니다.
주인공은 히로인이 다 죽는 엔딩으로 끝난 작품에 악플 하나 달았다고 “그럼 니가 다 구해 봐.”라는 말과 함께 작품 속 등장인물에 빙의하게 된 안습한 남자죠. 게다가 자신이 읽은 작품에는 등장조차 안 하는 인물입니다.
‘새됐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인간 생각보다 걸물입니다? 알고보니 힘순찐 기사. 게다가 과거 있었던 왕당파와 귀족파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전 과거에 대한 기억은 본인에게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과거는 신경 안 쓰고 현재의 목표인 ‘히로인 구하기’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자신이 소설로 읽었던 스토리를 기억한 채로요.
덕분에 글이 진중하지 않고 가벼운 분위기로 흘러갑니다. 주인공이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거나 그런 게 아니다 보니 글의 분위기가 엄청 진중해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가볍게 읽기 좋죠. 게다가 전개 속도도 빨라 사건이 연달아 생기니 지루하지 않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분위기와 달리 배경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배경이 되고 있는 공작가의 세력관계부터 그것이 나라 전체의 정치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 공작부인이나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을 통해 조금씩 편린을 드러내는데 그 가볍게 언급되는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현재 상황을 짐작할 수 있도록 구성해두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볍게 읽어나가면서도 ‘뭔가 설정이 이해가 안 되는데?’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끔이지만 설정이 어긋난 것 같은 느낌에 다시 전에 읽었던 화를 다시 돌아보는 경우가 생겼던 적이 있어서...(물론 이건 제 기억력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가 정말 잘 빠졌습니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마저도 하나하나 개성이 뚜렷합니다. 단순히 지나가는 조연 같은 사람도 주인공의 행적에 영향을 미치고, 잠깐이지만 주인공과 캐미를 맞춰줍니다.
대표적인 예가 처음 등장하는 치안대장님입니다. 등장할 때의 대사나 묘사를 보면 ‘일에 찌들다 못해 지쳐버린 부장급에 있는 중년 남자’라는 느낌인데, 이 아저씨가 또 능력이 없는 건 아니라서 ‘이런 상사가 있으면 일할 때 재미는 있겠다.’ 싶습니다.
이런 인물들 덕분에 글을 읽어 나갈 때 뭔가 톡톡 튀는 맛이 있어요. ‘누구를 만나든 주인공과 캐미가 생기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품을 정도로 강렬한 개성을 지닌 조연이 많아서 그런 조연과 주인공의 캐미를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조금은 가볍지만 그래도 내용적으로 충실하고, 주인공뿐 아니라 주인공과 합을 맞춰 이야기를 끌어가는 톡톡 튀는 조연들을 함께 보고 싶으시다면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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