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남작가의 회귀자>의 주인공 블랑 카드무스는 공허로 인해 멸망하는 세계의 끝자락에서 멸망을 막으려는 결사의 한 축을 맡고 있습니다.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요즘 작품들이 다 그렇듯 회귀하여 과거로 돌아가게 되죠. 여기까진 흔한 회귀 클리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기존 클리셰와 다른 점은, 주인공이 회귀의 주체 혹은 거창한 인류의 마지막 희망 따위가 아니라, 사태를 해결하려 계획했던 인물들 가운데 주연4 정도의 애매한 위치라는 점입니다. 그는 적어도 원래 계획에서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그는 몰락한 남작가의 후계자로서, 늘 도망치거나 상처입고 싸움을 강요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삶의 주도권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거죠. 그런 그가 회귀하면서 자신의 원수에게 드디어 그가 받아왔던 것을 돌려주는 시나리오는, 전개상 사이다이기도 하면서 그의 삶에 내린 빚을 긴 세월을 거쳐 돌려받는 한 남자의 분노가 충분히 드러난 전개이기도 했습니다.
소년 시절로 회귀한 그는, 결사대 가운데 제대로 회귀에 성공한 것은 자기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몰락한 가문의 후계자로서 끝없이 도망치고 상처입었던 삶을 하나하나 맞서 되갚아주지만, 진정 과거로 돌아와야 했던 목적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죠.
멸망의 공허를 막기 위한 결사대의 행방, 주인공의 복수와 과거의 인연들이 엮는 향후의 전개가 기분 좋게 기다려집니다.
정통 판타지이자 회귀물인 한 작품으로서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어딘가 서툰 듯 하면서 때때로 진솔하게 느껴지는 감정 묘사 때문에 주인공의 처지와 심리에 천천히 공감하게 되므로, 거기서 느껴지는 주인공의 입체적인 심리에 공감하며 읽게 된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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