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김용 무협 소설을 찾아서 읽었더랬습니다. <영웅문>, <소오강호> <의천도룡기> 등. 그 다음이 궁금해서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소설들이었지요. 이야기에 푹 빠져서 제가 무림 고수가 된 것처럼, 이 책들 읽는 동안에는 참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하면서 요즘 무협물을 뒤져 보고는 있는데, 좋은 작품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개 <000가 되었다>라는 비슷비슷한 제목에, 천편일률적인 이야기 전개.
왜 그리도 우연히 해결되는 것들이 많은지, 치고 받고 하는 싸움 장면은 왜 그리도 장황한지, 제일 쎈 놈이라는 자를 이기고 났더니 더 쎈 놈이 나오고, 그를 이기고 나면 더 더 쎈 놈이 나오고.
그런데,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무려 공모전에서요.
기존의 무협과 확연히 다릅니다. 남자 주인공이 세 명인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스타일로 멋질 뿐만 아니라, 악당이나 장로들은 물론, 한 번 나오고 마는 단역 캐릭터 들도 매력이 있습니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에 담긴 복잡다단한 감정들. 단순히 무림 영웅들이 이기고 지는 문제만이 아니라, 인생의 진지한 문제, 삶에서 흔히들 저지르는 인간적인 실수나 통념에 대한 생각도, 짧지만 결코 얕지 않게 이야기합니다.
J. R. R. 톨킨이 판타지 소설 장르를 만든 사람이라고 하지요. 엘프, 오크, 호빗 등이 등장하는 세계관을 만들었으니까요. 문피아의 많은 판타지 소설들이 그 세계관 속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무협 역시도 일정한 세계관이 있습니다. 무공, 운기조식, 명문정파와 사파마교 등.
와룡생은 이런 세계관을 처음 만든 소설가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제가 지금 추천하는 <무명소>는 그 와룡생의 <무명소>를 계기로 쓰신 거라고 합니다.
와룡생의 <무명소>가 박후인의 <무명소>보다 더 재미있을지 저는 궁금합니다. 박후인의 <무명소>는 마치 마블 코믹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합쳐 놓은 것 같거든요. 어떻게 박진감 넘치는 무협지가 감동적일 수 있는지 저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판타지 소설 쓰시는 분들께 맞아 죽을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박후인 작가님이 톨킨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박후인 작가님깨 차라도 한 잔 얻어 먹은 것은 아닙니다만.)
공모전 응모작인데, 양도 꽤 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메일 확인하고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명소> 새 에피소드를 읽는 일입니다. 매일 밤 새 에피소드가 올라오거든요.
저는 엄청난 무공을 지니고도 아닌 척하는 사마웅이 제일 멋있습니다.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면서, 아무에게도 자랑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참 대단합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미녀, 흑소선자 신소란의 카리스마도 멋지고요, 궁극의 무공 백운기에게 감히 무림잡배라며 싸대기를 날리는 무림화 사마연도 귀엽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 이름 쓰다 보면 한이 없겠네요.
<무명소>. 색다른 무협소설 읽으시고 싶으신 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팁. <무명소> 읽으시는 법인데요.
1. 천천히 읽으세요. 다른 무협 읽듯 후루룩 읽으시면 산만하고 재미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2. 두 번 읽어보세요. 저는 매일 올라오는 것을 읽고, 주말에 다시 몰아서 읽습니다. 이렇게 읽어 보면, 처음 읽을 때 못 본 것이 보입니다. 래리 고닉의 세계사 만화도 좀 그런 편이지요. 처음 읽을 때 재미있는데, 나중에 다시 읽으면 전에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것이요. <무명소>도 그런 스타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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