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순간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에서 흑마법사는 그저 검은색마법을 쓰고 신성력에 약한존재가 되었습니다. 뭐 뼈다귀 일으키고, 인체실험좀 하다가 주인공한테 두드려맞고... 옛날의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들은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소설의 초반은 그저그런 회귀물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뭐 멸망한 나라의 누군가가 제국에 복수하는 일이 한두번 있는건 아니니까요. 여기서도 막 나는 죽지않는다 이러길래 아 뭐 후작가 누군가로 환생하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죽여버리고 진짜 먼 미래, 몇백년 몇 천년 전으로 보내더라구요. 신박했습니다.
그렇게 미래로가서 힘도 되찾고, 뭐 여친도 사귀고, 만사가 귀찮다고 말하며 세계도 구하고 그런소설들이 대부분이죠? 이소설도 아마 그럴거에요. 그러면서 재미없고 지루하면서 전형적이기까지 했다면 추천을 안했을겁니다. 같은 돼지고기여도 남들 그냥 구워먹을때 잘개다지고 소스까지뿌려서 미트볼을 만들어버리면 그건 나름 색다른 요리 아니겠습니까?
이 작가분도 그렇습니다. 어디서 본 전형적인 것들도 있어요. 숲을 좋아하는 앨프나 광물캐는 드워프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거기에 설정이 추가되고, 각자의 감정선을 집어넣으면 그게 입체적인 인물 아니겠습니까? 뭐 종족이름 그라쿠, 라프 이런식으로 짓고 습성다 똑같은 것보단 이게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전형적인 이름으로 친근감을 준 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을 붙이고 색을 입힙니다.
주인공도 그렇습니다. 여기저기서 많이 본 직업이에요. 맨날 보던 환생자 입니다. 하지만 흑마법사스러운 마인드와 흑마법사가 부리는 마물의 무서움, 마법의 두려움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습니다. 맨날 본드래곤 데스나이트 리치 나와서 우앙 산이잘리고 바다가 뒤집히고 독자 속도 뒤집어 버리는 소설들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 아이덴티티가 있는건 정말 뛰어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스토리 진행이 막 숨가쁘게 진행되면서 스토리 몰아치고 숨쉴틈없이 보다가 정주행끝나고 아 다봤다 좀 쉬어야지 하면서 놓게되는 그런글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라는 스토리 진행은 안하고 꽁냥꽁냥 연애질이나 하는 그런소설도 아닙니다. 소소하게 주인공일상도 조금들어가고 캐릭터들간의 화학반응도 보여주고 그러면서 스토리도 확실히 짚어줍니다.
굉장히 부드럽게 잘 읽히는 글입니다. 100년묵은 산삼주도, 풍미가득 와인도 아니지만 꿀떡꿀떡 넘어가면서 향좋은 흑맥주 같은 글입니다. 흑마법사의 매력, 판타지 장치들에 관한 새로운 해석, 착실한 스토리 진행의 소설 후작가의 망령재림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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