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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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0 춰엌헐릿
작성
17.06.17 03:33
조회
2,064

 판타지를 읽는 것이 좋아서 학창시절, 친구녀석이 책방에서 빌려오는 판타지소설들을 읽으며 "나도 판타지를 써보고싶다!" 라고 생각하였었다. 어린 것도 어린 것이지만 적당히 작문에 대해 배운 것도 아닌 녀석이 읽은 것만 가지고 냅다 글을 쓰니 될 턱이 있나? 재미없다고 생각하던 소설보다 더욱더 재미없는 내 글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먹은 나를 꼬깃꼬깃 구겨나갔다.


 잔뜩 뭉그러져 구석에 있던 것을 꺼내고 본 건, 일에 치여 짜증이나서 냅다 사버린 이젠 먹지도 못하는 맥주 캔 하나와 콜라 한 캔, 제일 좋아하던 안주인 마른 오징어였다.


 "이제부터 술은 가급적 드시지 마세요."


 알고있습니다. 의사선생님. 왠 머저리같은 젊은놈이 화딱지가 나서 관상용으로 샀습니다. 젠장맞을... 가스레인지에 불을 키고 오징어를 구웠다. 죽은 놈이 뜨겁다고 배배꼬는 것이, 이러다 나한테 그만하라고 엿이라도 날리지 않을까? 라고 머릿속에 엿날리는 오징어를 떠올렸다.


 갓 구운 오징어를 찢으려다 그 뜨거운 몸뚱이에 허겁지겁 손을 댄 것을 격하게 후회하고는 차가운 콜라 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고, 입에서 "개같은 박대리같은놈, 오부장같은 더러운자식." 이라 지껄이며 몸통을 잘게잘게 찢었다. 같이 놀아주던 김주임은 남친이랑 놀러나가고, 나 혼자 새벽에 오징어를 뜯었다. 밥한술에 천장에 매단 굴비보며 밥먹었다는 자린고비를 떠올리며 맥주대신 콜라를 마시면서.


 일 하면서 밥보다 배불리 먹은 전자파 놈 때문에 컴퓨터도 키기 싫고... 오징어 한 조각 씹으며 구닥다리면서 이벤트하자더니 사내 독후감대회같은, 꼭 지같은 짓만 골라하는 오부장놈 따문에 결제한 1984 E-Book을 봤다.


 "그래그래 명작이지 명작."


 잘 쓴 글은 알았지만, 이런 암울한 거 읽기 싫었다. 판타지... 그래 주인공이 마법쓰고 칼질하고 개나소나 다 때려잡고 히로인과 쿵짝쿵짝 하는거. 그것이 갑자기 땅기더니 가슴속에 꼬깃하게 구겨진 '판타지 쓰고싶어.' 를 드디어 펼쳐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글쓰는 재주가 없었나보다. 그렇게 막 재미있는 글 쓰던 사람들은 괴물아니야? 라고 생각하게 되고 흥미를 잃더니 어느새 일하는게 늘어 일주일에 한 편 연재하게 되었다. 매일 글 쓰지 않는게 가장 큰 단점이란다. 니미럴... 야근 줄여주던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욕만 주구장창 쌓아두다. 초보작가에게 있어 마치 첫 직장에서 월급받아본것 마냥 아무것도 없는 방문록에 글이 달렸었다. 이름부터 희망녀 셨다. 나자렛 예수보려고 포도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마냥 방문록에 써주신 글을 읽고, 자주 찾아뵙겠다는 말씀 한마디에 낯 가리던 나란 놈이 그 분의 서재로 가서 이 수필집을 보게 되었다.


 평범하다. 글쓰는게 평범하다는게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생각. 이런게 있었다. 조금 아쉬웠다. 내가 뭐 말 잘못한게 아닐까? 내가 이렇게 잘못했는데,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같은 사소한 생활 이야기. 그 평범함 속에서도 평범하지 않은 자기반성문. 그런데 그 평범한 생활 속의 자신을 돌아본 수필이 내 안에 숨어있던 감성이라는 걸 머리채 잡고 질질 끌고나오고 있었다.


 바쁘다고 남들 만나자는거 귀찮다하고, 나한테 욕한다고 툴툴거리며 상사들 뒷바라지 늦게 한 나를 돌이켜보게끔 하였다. 쪽 팔렸다. 남들 다 똑같이 밑바닥 부터 하는건데 뭐 잘났다고 그래 고집만 부렸는지...


 결국 나도 플래너에 오늘하루 행동 돌아보기를 쓰기 시작했다. 욕 줄이기, 개 같이 굴어도 먼저 일 돕기... 물론 그 분처럼 자기 잘못을 떠올리며 반성하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감성충만해지는 새벽밤. 이제 막 더워져서 잠 못 이룰 때, 나는 이 글을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는 당신들에게 추천합니다. 바쁘게 달리기만 하느라 뒤를 차마 못보았을 때 이 글을 거울 삼아 뒤를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만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 ' 10

  • 작성자
    Lv.20 [탈퇴계정]
    작성일
    17.06.17 07:52
    No. 1

    맞아요, 저도 이 글 보며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고
    싱숭생숭 하기도 하고 포근해지기도 하고 즐거워하는 자신을 느끼고 있답니다
    심심할 때 하나씩, 피곤한 일상에 찌들었을 때마다 하나씩
    박하사탕처럼 까먹는 글이에욘 ㅎ ^_^ㅋ

    찬성: 1 | 반대: 3

  • 답글
    작성자
    Lv.10 춰엌헐릿
    작성일
    17.06.17 11:53
    No. 2

    좋은 작품이죠. 저에게는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글처럼 느껴져서 더 좋은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1 | 반대: 2

  • 작성자
    Lv.10 xh****
    작성일
    17.06.17 17:31
    No. 3

    생각이 혼잡스러울 때 한 편씩 읽고 있습니다. 그만큼 복잡해진 머리를 식혀주거나 하나의 생각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답니다.

    찬성: 1 | 반대: 2

  • 답글
    작성자
    Lv.10 춰엌헐릿
    작성일
    17.06.18 00:54
    No. 4

    참 신기하죠. 막 화가나거나 답답할 때 읽으면 박하사탕 먹은거 마냥 상쾌해진달까요? 저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3 내귀에찬밥
    작성일
    17.06.17 20:34
    No. 5

    천천히 읽어봐야겠네요^^

    찬성: 1 | 반대: 2

  • 답글
    작성자
    Lv.10 춰엌헐릿
    작성일
    17.06.18 00:52
    No. 6

    소설도 재미있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을 주제로 쓰는 수필도 좋은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99 맹자반
    작성일
    17.06.17 22:01
    No. 7
  • 답글
    작성자
    Lv.10 춰엌헐릿
    작성일
    17.06.18 00:51
    No. 8

    새벽에 감성 돋을 때, 짜증나는 퇴근길에 읽기 참 좋습니다. 추천합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61 Boot붓
    작성일
    17.06.18 01:50
    No. 9

    와, 책으로 나와도 소장하고 싶은 걸요? 추천 감사합니다.

    찬성: 1 | 반대: 2

  • 답글
    작성자
    Lv.10 춰엌헐릿
    작성일
    17.06.18 03:05
    No. 10

    좋으셨다니 다헁입니다.

    찬성: 0 | 반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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