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러시아 다크판타지. 척 보기에도 쉽지 않은 장르입니다. 멋진 단어 3개를 붙이면 3배로 멋있어지는 법이라지만, 이건 힙스터 3개를 붙인 거 아닌가요? 이정도로 대담한 시도는 야수의 심장도 아니고 그냥 야수 같습니다.
그런데 재밌습니다. 왜 재밌지?
주인공은 소설 속 판타지 러시아 제국에 빙의한 수의대생입니다. 아쉽게도 로판제국은 아니고 스팀펑크 제국입니다.
그런데 또 보통 스팀펑크는 아닙니다. 코끼리만한 덩치의 맹수들이 길바닥 비둘기처럼 득실거리고 심심하면 인간을 맛보고 즐기는데, 독한 인간들은 또 그걸 기어코 붙잡아서 생체병기로 굴리거나 투기장 포켓몬(실사풍)으로 써먹는답니다. 돌아다니는 포켓몬이 죄다 거다이맥스인 성인용 포켓몬 게임같은 느낌입니다. 팰월드인가요?
주인공은 이 다크판타지 러시아 제국의 가장 밑바닥 농노가 되었습니다. 수의대생의 지식과 포켓몬 마스터가 될 재능을 가진 농노가. 이 능력으로 집에 돌아가기 위하여 이 악물고 몸을 비튼다는 내용입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소설에게는 반드시 따라붙는 패널티가 있습니다. 장르적 문법과 설정에 대해 독자들과 합의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처음보는 5700자짜리 방대한 배경설정을 어떻게든 독자 입에 밀어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전혀 귀엽지 않은 포켓몬들이 돌아다니는 스팀펑크 판타지 러시아 제국입니다. 해수구제를 위해 플라잉 전열함이 동원되고 거다이맥스 시조새와 맞서 싸웁니다. 그야말로 낭만의 총집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낭만이 왜 낭만일까요? 어렵기 때문에 낭만입니다. 스팀펑크, 러시아, 괴수배틀까지 어느 하나 새롭지 않은 시도가 없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만큼이나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과연 작가님께서 이 세계관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스무스합니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의 야수들이 등장하고 온갖 생소한 지명과 설정이 보이는데 전혀 목에 걸리지 않습니다. 여긴 어디고 쟤는 누구고 얘는 뭐하는 놈이고 같은 설명을 세 페이지에 걸쳐 빽빽히 늘어놓는게 아니라, 행동과 묘사 속에 사르르 녹여냅니다.
인물의 캐릭터성도 확실합니다. 유대인 흑막 포지션의 뱀파이어와 군생활을 10년 넘게 하고서 병장 전역하는 힐러, 그리고 간지나는 스팀펑크 아이언맨이 읽는 내내 선명하게 제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야수들의 결투는 웅장하고, 빌런이 부리는 괴물들은 역겹도록 생생합니다. 작가님께서 힘을 팍 넣은 것 같은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칫 지나치게 묵직해질 수 있는 다크판타지 분위기를 러시아식으로 로컬라이징된 상태창의 드립들이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가시가 다 발라진 순살고등어를 먹는 느낌입니다. 어려운 진입장벽이 모두 해체되자 남는 것은 파이어 드래곤과 슈퍼-익룡의 웅장한 괴수대결전이었습니다. 꼭 14화까지 달려보세요.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멋진 장르 세 개를 섞어 정말 3배로 멋있어진 힙스터들의 희망, <증기시대의 야수조련사>입니다. 목요일에 유료화가 된다고 하니 그 전에 무료분을 읽어보시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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