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메디컬 장르소설, 열혈닥터 명의를 향해
요즘 의학장르를 다룬 소설들을 좀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의사를 다룬 작품이 많았던 반면 요즘은 외과의를 다룬 작품들이 많더군요. 사실 무협과 함께 종종 등장하는 한의학를 제외한 의학 분야는 워낙 정보의 장벽이 높아서 작가들이 접근하기 쉬운 분야는 아니었죠.
한산이가 작가의 [열혈닥터, 명의를 향해]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흐름에 맞춰 등장한 작품입니다. 다만 열혈닥터(지금부터 [열혈닥터, 명의를 향해]를 열혈닥터로 줄이겠습니다)는 기존의 메디컬 장르 소설과는 몇 가지 다른 발자취를 밟고 있습니다.
보통 대부분의 메디컬 장르들이 일반 외과, 혹은 흉부외과를 다루는 반면 열혈닥터에는 일반인에게 아주 생소한 두경부외과라는 소재가 등장합니다.
두경부는 이비인후과에서 파생된 영역으로 귀, 코, 얼굴, 구강 목 등 뇌와 눈, 치아를 제외한 두부와 경부의 모든 영역을 다룹니다. 소설에는 갑상샘암(과거에는 갑상선암으로 불림), 혀암, 기도 폐쇄 등이 등장하죠.
그래서일까요? 열혈닥터에는 응급상황이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심정지 상황이 밥먹듯이 나오지도 않고 써전을 다룬 다른 소설들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니거나 몇날 며칠 당직을 서지도 않습니다. 사실 이런 소재는 장르 소설로 쓰기에는 썩 좋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난 속에서 영웅이 피어나듯, 주인공을 한계까지 밀어붙여야 독자들이 정신없이 구독 버튼을 누르면서 쫓아오니까요.
그렇다면 작가는 이 글을 어떻게 전개했을까요? 마법 서클을 추가하거나 게임 시스템을 도입할까요, 아니면 병원의 부조리라는 거대한 적과 싸울까요?
재밌게도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는 글을 천천히 하지만 담담하게 풀어가죠. 그리고 작가는 이 담담함 속에 디테일을 집어 넣습니다.
여기서 작가가 현직에 있는 게 큰 장점이 됩니다. 보통 메디컬 장르 소설들이 놓치고 가는 사소한 디테일이 살아 있죠. 보비(전기 소작기)같은 의료 장비의 발명, 헤파린의발견 등 작가가 이런 수술 도구 혹은 약품들을 마주하며 깨달았던 감상이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생경한 것들이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처럼 이런 사소한 장치들이 모여서 독자를 수술실로 혹은 두경부 병동으로 안내합니다. 그 안에서 작가와 독자가 숨을 함께 숨을 쉬죠.
또한 주인공 외의 캐릭터들도 주인공에 뭍혀 가지 않고 글 속에서 자신만의 특성을 갖고 살아서 움직입니다.
선악에 근거해서 행동하기보다 보통 사람들처럼 적당히 화도 내고 적당히 슬퍼하며 적당히 선의도 베풉니다. 중간 중간 개연성을 넘나 드는 우연이 나타나지만, 뭔가 크게 주고 받는 게 없기에 또 무난하게 진행됩니다.
추천글을 마치며, 이 글에 대해 간단하게 평하자면,
이 소설에 사이다는 없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며 환자가 치료 뿐 아니라 양질의 삶까지 누릴 수 있도록 수술방법을 고민하는 의사가 있습니다.
깔깔깔 웃지는 못하지만 피식 피식 웃음이 나는 조연들이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젊은 의사가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이 소설이 의사분들의 힐링물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독자로써 처음 접한 잔잔한 메디컬 장르 소설, 한산이가의 [열혈닥터. 명의를 향해]에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덧. 작가분의 전작인 [군의관, 이계에 가다]는 아쉬운 점이 많더군요. 진짜 군의관이 아무것도 없는 이계에서 의학 지식을 풀어가는 소설을 기대했는데... 작가님, 다음 번에 진짜 이계 혹은 무인도에 떨어진 군의관이 의학지식을 이용해 난관을 헤쳐나가는 소설 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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