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한 줄로 표현해야 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암이 암에 걸려서 암이 낫는다고요.
워록사가의 초반부는 전형적인 차원이동물로 시작합니다. 흔히들 이고깽이라고 부르는 그런 소설들 말이죠. 왜, 이계진입 고딩 깽판물이라고 하잖아요? 현대를 살아가던 주인공이 판타지 세상으로 넘어가게 되고, 그 세상에서 용사가 되든지, 뭐가 되든지간에. 강력한 힘을 얻어서 자신의 앞날을 헤쳐 나가는 그런 소설들이요.
이런 차원이동 소재의 소설들은 뻔하지만, 그런 뻔한 맛에 보는 소설들이 대부분인데.. 워록사가는 다릅니다. 같은 설정이라도 ‘주인공의 성격’이라는 변수 하나를 가지고 완전히 전개를 뒤틀어 버립니다. 좋게 말하면 독특한 전개고, 나쁘게 말하면 괴이쩍은 서사 방식이죠.
초반부 줄거리만 보아도, 대부분 이고깽류의 공통점인 시원시원한 전개와는 담을 쌓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래 초반줄거리 조금 적습니다.)
평범한 게임폐인이던 주인공은, 자신이 플레이하던 게임 ‘워록 사가’ 의 세상에 들어가게 됩니다. 자신이 플레이하던 게임 캐릭터, 강대한 흑마법사의 마력을 지닌 ‘마왕 샤’ 의 지식과 육체를 가지게 된 것이죠. 이런 주인공이 맨 처음 한 행동이 뭔지 아세요?
마을로 가서 사람들과 만나고 모험을 떠날까요? 예쁜 엘프 처자를 만날까요? 마법의 힘으로 사람들을 돕고 명성을 얻을까요? 마왕으로 군림하기 위해 악명을 떨칠까요? 아니면 현대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을까요? 전부 아닙니다.
“아… 얼떨결에 마왕이 되긴 했지만, 난 그냥 게임폐인이고... 여긴 중세시대인데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나저나 똥누면 닦을 휴지는 어디서 구하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목적지 없이 어슬렁거립니다.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우연히 마을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도 무슨 계획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된겁니다. 벌써 암에 걸리기 시작하는거죠.
주인공은 막상 마을에 왔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피곤해서 잠시 좁니다. 자는동안 소매치기를 당해 돈을 털리고요. 일어나 보니 돈이 없네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여비를 구하기 위해서 몇가지 물건을 팔려고 노점상을 차립니다.
얼굴을 가리는 후드를 쓰고 물건을 팔고 있는데 마을사람이 다가옵니다. 얼굴 좀 보자고, 주인공은 마왕인게 들킬까봐 싫다고 거절하는데요. 마을사람은 저거 문둥병자 아니냐고, 왜 얼굴을 가리고 다니냐고 욕하면서 돌을 던집니다.
네. 그렇습니다. 한때 마왕으로 불릴 정도로 강대한 흑마법사가, 마을사람 A님 에게 욕먹고 돌멩이로 맞습니다.
열받은 주인공은 염동력으로 모두 제압해 버리지만, 그 뒤에 또 결정장애에 빠집니다.
‘이거... 사람을 죽이면 또 현상범이 되고 범죄자가 될테니까 죽이기는 좀 그렇다. 그런데 그냥 풀어주자니 그것도 좀 그렇다. 나한테 돌을 먼저 던진놈들인데... 멀쩡히 놔주는건 말도 안되지 않냐. 얘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결정장애에 빠진 주인공이 그 상태 그대로 한참 있으니, 소란을 보고 찾아온 기사a 님이 발견하고는 무슨 일이냐!! 외칩니다. 기사님께서 사정을 듣고 보니, 주인공은 그냥 장사를 하려고 했을 뿐이네요? 자기 돈주머니를 꺼내서 주인공에게 들려 보냅니다.
기사에게 돈을 받고 여비가 생겨서 기뻐하던 주인공은,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자괴감에 빠집니다.
‘먼저 잘못한 건 그 마을사람 A인데.. 애꿎은 기사분의 돈주머니를 받고 기뻐하는 나는 완전 쓰레기 같은 자식 아니냐.. 기사님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나한테 돈을 뺏겨야되나... 돈을 받더라도 나한테 돌 던진 사람한테 받는게 맞는데, 준다고 냉큼 받아오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난 개새끼다. 아... 자살하고 싶다.’
이런 암덩어리 전개가 계속 이어집니다. 일관성 있게 찌질해요. 워록사가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복구 불가능한 쿠크다스의 일대기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쿠크다스 사가로 제목을 바꿔도 될정도로요.
산적이라던지 도적같은 녀석들은 시원시원하게 목을 따버리면서도, 주변 엘프 처자라던지, 동료 하나 죽으면 멘탈이 깨지는 주인공들에 의문이셨습니까? 여기 언제나 멘탈이 깨져있는 주인공을 보러 오세요!
전쟁터에서는 적들을 무참히 썰어버리는 주제에, 연심을 품은 상대한테는 말을 고민하는 소시오패스같은 주인공들에 의문이셨습니까? 여기 적에게도 말을 고민하는 암덩어리를 보러 오세요!
게임은 지면 재미없다.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 이기는 게임이 재밌다. 이런 성격의 분들에게는 걸맞지 않는 소설입니다.
게임은 좀 털리면서 배우고, 내가 불리한 게임이어야 지더라도 재미가 있다... 싶은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2시 54분 추가
답답하고 암덩어리인게 매력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서 쓴 추천인데, 추천글에서 그 부분이 잘 전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음.. 역시 이래서 추천글도 필력이 있어야 하는건가 보네요. 제 개인적인 감상을 전달하는 데에는 필력이 딸려서 실패했으니, 이해하기 쉽게 유명 작품들과 비교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시원한 전개가 꼭 필요한가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처럼 소년만화적인 왕도를 걷는 것도 좋지만, 이카리 신지 같은 찌질한 주인공에게도 나루토 루피 이치고 못지 않은 매력이 있습니다. 황용 없었으면 진즉 객사했을 암덩이 곽정도, 패도적인 행보를 보이는 묵향만큼이나 경쟁력 있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구요.
워록사가의 주인공은 그러한 성향이 극대화된 인물이기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암덩이라는것을 강조한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악평이 결코 아닙니다. 추천글입니다.
믿으세요
Commen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