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활어회보다 선어회를 좋아합니다.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갓잡아 올려 담아낸 활어회의 싱그러움도 좋지만, 시간과 공을 들여 고유의 식감과 풍미를 높인 선어회에는 견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론 활어회가 더욱 땡기는 날도 있습니다.
술과 함께 이 두가지를 동시에 맛본다면 그날만큼 행복한 날도 드뭅니다.
장르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활어회처럼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소설.
소위 말하는 대리만족을 주는 작품도 좋아하지만 선어회처럼 오랜시간 공들여 읽는 맛을 높여준 작품 역시 좋아합니다.
청비작가님의 기원을 읽으며 두 가지 충족감을 동시에 채우는 기쁨을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기원은 회귀물입니다.
고아로 성장해 고생 끝에 자수성가한 주인공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과거로 회귀합니다.
한데 이 주인공 뭔가 특별합니다.
대부분의 회귀물 주인공은 기껏해야 몇년, 길어도 몇십년 남짓인데 반해 우리의 주인공은 가도 너무 멀리 가버립니다.
무려 수십 세기를 회귀해 청동기 시대로 회귀해 버린 것이죠.
게다가 불운하게도 갓난애기입니다.
도덕과 윤리 대신 생존이라 쓰고 야만이라 읽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잔혹한 세계.
더 운없게도 이미 청동기 시대임에도 주인공의 부족은 아직까지 석기 시대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불운은 불운을 부르나 봅니다.
유일하게 자신을 보호해줄 어머니조차 부족내에서 힘이 없어 멸시당하는 처지입니다.
이를 극복해 진정한 지배자로 우뚝 서는 이야기가 청비님의 기원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 이전에 독자로서, 최근 쏟아져나오는 작품들을 보며 지독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분명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은 무엇.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신 분들이라면 기원을 재미있게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기원을 읽으며 다시 한번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이막수란 캐릭터가 '정이란 무엇인데 생사를 가늠하는가.' 라는 화두를 던져 줬다면, 청비님의 기원은 '혈육의 정' 과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과거 임준욱 선배님의 촌검무인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기원에서 다시 한번 느끼며 그동안 참 많이도 무뎌졌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기원은 과거 연중되었던 작품이지만 작가님의 공지를 읽으며 십분 공감했습니다.
어려움을 딛고 다시금 집필을 시작한 청비 작가님을 응원하며, 좋은 글을 찾아 하루에도 수십번씩 문피아를 찾는 독자님들께 ‘기원’을 추천합니다.
찬성: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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