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현실게임 그리모어(Grimoire)

추천할 글이 많아서 행복합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글을 먼저 추천하는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문 추천업자로 알려지면 곤란하니 적절한 쿨타임을 두고 몇 개인가의 글을 추천할 예정입니다.

여튼 첫 타자는 이면현실게임 그리모어.

요즘 나온다 나온다 하는 증강현실 고글 같은 것을 이용한 어느 게임의 한국 발매로 사건은 시작됩니다. 비운의 천재의 유작. 단순히 그런 게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 게임의 이면에는 천재의 망집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통해 “무언가”를 볼 수 있게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당신을 바라본다. 원래대로라면 현실과 겹치는 일 없이 존재해야할 것들도 현실을 인식하게 되고,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실 이면현실게임 그리모어는 우연한 기회에 선작을 했다가 초반의 미묘함에 쭉 읽을까 말까를 고심했던 글입니다. 게임과 현실의 결합은 너무 흔한 소재이고, 이왕 뻔한 글을 읽을 거라면 좀 더 이쪽 장르적 재미에 충실한 글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면현실게임 그리모어의 게임적 장르는 TCG, 카드 배틀입니다.

유희왕인가???

뭐 엑조디아 소환이나 흉악하고 창의적인 원턴킬 콤보를 보는 맛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좀 밋밋하죠. “내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카드게임이라는 룰 안에서만 통용되는 뭐 그런 것이니까요.

이걸 발을 뺄까 말까 고심하면서도 쭉 읽은 까닭은 우선은 인생 낙장불입인데 한 번 손댄 글을 너무 초반에 속단하기는 치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사실 이쪽이 본론이지요, 바로 글 자체가 단정하고 탄탄한 느낌을 줬기 때문입니다.

결국 개연성이건 필력이건 고증이건 중요한 건 독자가 글을 얼마나 그럴 듯하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면현실게임 그리모어는 초반의 소재 면에서 제 흥미를 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포인트까지 제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포인트란 바로 글의 정체가 드러나는 기점이었습니다.

네. 이 글은 쪼잔하게 불쌍한 몬스터나 카드에 잡아서 가랏 피카츄! 하고 트레이너는 뒤에서 “나의 턴!” 이런 말이나 외치는 TCG가 아니었습니다! 이 글은 현실 TCG 소설이 아니라 초인들의 제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지만,

가이버, 가면 라이더, 테카맨 블레이드.

좋아하신다면 같이 달려봅시다!

단정하고 흔들림 없는 필력과 피가 끓는 소재로 무장한 이면현실게임 그리모어.

초반의 차분함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최승윤]

이 글 정말 재미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