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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ersonacon 놀고싶은칼
작성
23.04.14 18:32
조회
169

악인들의 대사형-표지.jpg

<악인들의 대사형> 권태용, 류진 


나쁜 놈들 이야기는 왜 다 재미있을까?

 

# 누구나 뱃속 깊숙이 빌런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천성이 순순하거나 사회화가 잘됐거나 억압이 심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나오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빌런은 있다. 반드시 있다(어째서인지 빌런은 머리도 가슴도 아니고 배에 사는데, 어쩌면 그래서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나 보다).

혹시 뱃속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 봐도 나오는 게 없다면, 강아지를 차 꽁무니에 매달고 달린 동물학대범이라든가 걸핏하면 지랄 발작하는 갑질 상사를 떠올려 보라.

경찰에 신고하고 '2년의 징역 또는 2천만 원의 벌금'형을 받으리라 기대했다가 집행유예로 멀쩡히 나와 히죽거리는 놈의 상판대기를 보고 싶은가, 아니면 번지 벨트로 놈의 발목을 차에 매달고 콘크리트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싶은가?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500만 원의 과태료, 적어도 평온한 근무 환경'을 기대했다가 아침저녁으로 놈과 마주치면서 왕따 당한 끝에 기어이 사표 쓰고 말 것인가, 아니면 지랄 발작하는 놈의 면상에 죽빵을 날려 옥수수 왕창 털어 버리고 싶은가?

선량하고 건전한 준법 시민이라면 마땅히 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자를 선택한다면, 혹은 후자 쪽에 일말의 끌림이라도 느껴진다면 당신 뱃속의 빌런이 꿈틀거린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는 빌런의 행동 강령이다.

번지 벨트의 탄력으로 통통 튀며 콘크리트 도로를 긁는 동물학대범의 자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꼬리뼈 찌릿찌릿한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갑질 상사 놈의 턱주가리가 돌아가고 생니들이 옥수수알 튀듯 날아가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상상하면서 동막골 팝콘 신의 강혜정 못지않은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면 당신 뱃속의 빌런이 깨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좋은 놈으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놈은 갖춰야 할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다. 넘으면 안 되는 선이 있고 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잔뜩이다. 백번 좋은 일을 해도 한 번의 잘못으로 나락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세상인심의 냉혹함인지라, 뭘 좀 하고 싶어도 옴짝달싹하기가 조심스럽다. 참으로 답답하고도 팍팍한 삶이 아닌가.

나쁜 놈으로 살기는 쉽다.

모름지기 나쁜 놈이란 갖춰야 할 걸 팽개치고 지켜야 할 걸 거스르는 자요, 선 넘기를 주로 하고 하면 안 되는 일일수록 즐거워하는 자! 세상의 온갖 제한과 제약을 짓밟고 깔아뭉갬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악명이니, 뭐든 하고 싶은 대로 거침없이 자유롭다. 이 얼마나 유유하고 홀가분한 삶인가!

이래서 나쁜 놈 이야기가 재밌는 것이다.

나쁜 놈에게 한계가 있다면 오직 작가의 상상력뿐, 작가가 보장하는 무한 자유의 혜택 아래 나쁜 놈들은 저마다 찬란한 개성을 꽃피운다.

어깨 부딪치고 시비 거는 시시하게 나쁜 놈부터 뒷골목에서 삥이나 뜯는 치사하게 나쁜 놈, 강자 앞에서는 굽실거리다가 약자만 보면 내리누르려 드는 비겁하게 나쁜 놈, 아흔아홉 개를 갖고서도 백을 채우겠다고 하나가 전부인 이를 잡는 탐욕스러운 나쁜 놈, 돈이든 명성이든 쾌감이든 저 좋자고 남의 목숨을 희롱하는 변태 같은 나쁜 놈,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당최 모르겠는 이상하게 나쁜 놈……

심지어 생긴 것도 좀 받쳐 줘야 하는 좋은 놈과 달리, 나쁜 놈은 각종 결핍과 결함과 장애를 마다하지 않으니, 오히려 그 독창적인 생김새로 별호를 획득하기도 한다. 잘 만든 나쁜 놈은 캐릭터만으로 한 보따리의 이야기가 된다.

 

#무엇보다, 나쁜 놈은 문제를 일으킨다.

문제란 이야기의 출발점이니, 나쁜 놈들이 일으킨 이런저런 문제들을 좋은 놈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이야기인 것이다.

어떤 나쁜 놈들이 나오는지, 그놈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벌이는지는 그래서 이야기의 재미와 직결된다.

시시한 놈들이 저지른 시시한 짓거리를 정리하는 과정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이야기의 요소요소에서 온갖 종류의 나쁜 놈들이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게 흉악한 일을 벌여 줘야 그걸 해결하는 좋은 놈들도 빛날 것이고, 그 과정 또한 흥미롭지 않겠는가. 매력적인 나쁜 놈은 그 후광을 좋은 놈에게까지 드리운다. 어둠이 깊을수록, 짙을수록 빛은 화사하고 찬란해 보이는 법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 가지 더.

좋은 놈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장르의 속성상 필연적으로 좋은 놈은 고난과 역경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곧장 감정이입을 일으킨다. 좋은 놈이 고통받을 때 우리도 함께 괴로워지고 슬퍼지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놈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장르의 속성상 필연적으로 나쁜 놈도 고통받는 순간이 오는데, 이는 감정이입이 아니라 쾌감을 일으킨다. 얼마나 나쁜 놈이건, 어떤 나쁜 짓을 저질렀건 상관없다. 놈이 저지른 짓과 당하는 고통이 비례할 필요도 없다. 나쁜 놈은 당해도 싸기 때문이다!

나쁜 놈이 당하는 꼴은 마냥 좋다. 그 나쁜 놈이 경지에 이른 놈이라면, 그러니까 내 털끝과 상대의 목숨을 등가로 저울질하는 균형감각, 어떤 식으로 갚아 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창조력과 성실성, 그게 어떤 종류의 방식이든 실행에 옮기는 과단성과 행동력, 그 길이 험하고 힘들지라도 끝내 관철하는 추진력과 지구력을 갖춘 자라면, 더 나아가 그로 인한 결과까지 책임지고 받아들이는 자라면, 쾌감을 넘어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질 것이다.

나쁜 놈은 퇴장하는 순간까지 밥값을 한다.

 

<악인들의 대사형>은 제목부터 대놓고 나쁜 놈들 이야기다.

과연 이야기의 초입부터 무림에서 절대 원한을 사지 말아야 할 다섯 명의 나쁜 놈들이 나온다. 그중 넷은 별호 그대로 피바람을 몰고 다니는 네 명의 나쁜 놈들로, 등장하자마자 유혈 낭자하고 골육 비산하는 아수라장을 펼쳐 놓는다. 뒤이어 나머지 하나, ‘정사를 가리지 않고 천하제일인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무공까지 센 나쁜 놈이 나오더니 그들 넷을 제자로 거두고 죽어 버린다. 사부의 유지에 따라 그들이 맞이하게 된 대사형이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 ‘악인들의 대사형이다.

천하제일인의 첫 번째 제자이자 피바람 사 인조의 큰형님 될 자라면, 삼두육비의 괴물 같은 체격이라든가 허공답보로 슝슝 날아다니며 장풍을 퓽퓽 쏟아 내는 무공, 사람 목숨을 초개처럼 짓밟는 무자비함, 적어도 피태풍쯤 되는 별호에 걸맞은 나쁜 놈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엥? 이 해말간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망울, 순진무구와 천진난만의 결정체 같은 여덟 살 꼬맹이는 뭐냐!

에이, 말이 돼?

 

말이 되는지, 아닌지는 읽어 보면 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말이 되는지 아닌지를 따질 겨를도 없을 것이다.

당신 뱃속의 빌런이 신나서 까불대는 춤사위로 정신을 홀딱 뺏어 버릴 테니까!

 

이쯤에서 불쑥 치솟는 궁금증, 그럼 좋은 놈들 이야기는 재미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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