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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Stepfather Step)

작성자
Lv.5 바다별
작성
07.01.08 22:00
조회
5,734

작가명 : 미야베 미유키

작품명 : 스텝파더 스텝 (Stepfather Step)

출판사 : 작가사랑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아버지나 새어머니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엄마들은 거의 다 새엄마였다.(뭐 어떤 것은 원본에는 친엄마로 나오는 동화도 있지만 사소한 것은 넘어가자.) 또한 'Stepfather' 라는 스릴러 영화도 있다.(엄마와 눈이 맞은 아저씨가 알고 보니 살인마라는 다소 진부하고 전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오래 된 영화다. 인기가 좋아서 시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난 별로던데...) 게다가 뉴스를 장식하는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에도 역시 새아버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요즘은 친아버지도 자주 보이지만...) 하여간 '새' 라든지 '계' 라든지 '의붓'이 붙은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거의 안 좋은 역할로 등장하고 있다. 작년에 끝난 '하X이시X' 라는 드라마도 새엄마가 무지 나쁘게 나온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떨까? 제목에 Stepfather 라고 떡하니 써있는데, 과연 어떤 새아버지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우선 총 7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책의 주요 등장 인물부터 알아보자. 새아빠가 되기 싫은 도둑 총각. 그를 새아빠로 만들기 위해 잔머리 굴리는 중딩 쌍둥이. 말하자면 정보 길드 대장이자 도둑 총각의 아버지. 등장인물부터 심상치 않다. 정보 길드라고 해서 이것이 환타지라고 생각하면 님하 골룸이다. 이해하기 쉽게 그렇게 표현한 것 뿐이니까.

쌍둥이 타다시와 사토시는 각자 바람이 나서 가출한 부모 덕에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렸다. 부모님은 인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로맨스를 꿈꾸며, 상대방이 애들을 챙길 것이라 믿고 멀리 멀리 가버렸다. 다행히 통장에 잔고가 넉넉해서 그럭저럭 살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을 보며 누군가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둘은 생각한다. 그런 그들의 눈에 뜨인 것은 옆집을 털려고 정탐하다가 멍청하게 벼락을 맞고 떨어진 주인공이다. 둘은 주인공의 약점을 잡고 '경찰에 갈래요 아니면 아빠를 할래요?' 라는 둘 다 고르기 싫은 양자 택일을 강요한다.

그 이후 애인도 없는 총각 주인공의 중딩 아빠되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같이 살지는 않는다. 영악한 쌍동이는 이미 부모님은 먼 곳에서 회사를 다녀서 주말에만 오셔요라고 연막을 쳐둔 상태였다. 따라서 가끔 일이 있을 때만 들르면 되는 것이다...였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다면 참으로 재미가 없을 것이다. 매번 쌍둥이들은 사건에 연류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빠가 달려가고, 이상하게 얽힌 사건을 풀어야 했다. 물론 그러면서 정도 새록새록 쌓이고 말이다.

주인공은 과연 이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도 하고 혼자 슬퍼도 하고 혼자 망상에 빠져서 삽질도 한다. 언젠가 부모들이 돌아오면 그들의 관계는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로 정을 안주려고 냉정하게 대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지금을 즐기자였다.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생각하느라 전전긍긍하기보다는 같이 있는 지금을 더 소중히 하자는 것이었다.

가족이란 세상에서 제일 가깝지만 그만큼 무의식적으로 가장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관계이다. 쌍동이의 부모가 그렇다.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집을 나가버면서 자식에게 더없이 큰 상처를 줘버렸다. 그것은 나중에 어떻게 해도 보상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과 다른 이(자식) 중에서 과연 무엇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할까? 무엇을 고르던지 한쪽에는 상처가 될 것이 뻔했다. 자식에게건 자기 자신에게건 상처는 남는다. 친구나 다른 사람이라면 속된 말로 생까면 그만이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잊혀지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그렇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다. 호적을 파지 않는 이상, 아무리 보기 싫어도 명절때나 관혼상제 같은 일이 생기면 봐야 하는 것이 가족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가족은 조금 의미가 다른 것 같다. 비록 상처가 되지만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쌍동이는 처음에는 놀랍고 슬프고 배신감도 느꼈겠지만,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다. 주인공 역시 반강제로 갑작스레 맺어진 관계이지만, 점점 정이 쌓이면서 나중에는 진짜 자신이 아빠가 된 듯한 착각도 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 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까? 쉽게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쉽게(과연 쉬울지는 모르지만) 포기하는 것이 조금은 걱정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르게 보면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이미 끝나버리고 다시 이어지지 않을 인연을 붙잡고 있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상실감과 허무함 뿐일테니까. 돌아오지 않을 것은 그렇게 내버려 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꽤나 마음에 드는 생각이었다.

꼭 핏줄이 이어져야만 가족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정이 있으면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따지고 보면 엄마와 아빠는 핏줄로 이어져있지 않지만 가족이지 않는가? 그 개념을 자식과 부모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도둑을 아빠로 골랐을까?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과 그 부친이 벌이고 있는 사업은 무척이나 특이했다. 도둑은 도둑인데, 아무거나 훔치지 않는다고 할까? 뭐 그렇다고 거창하게 의적이니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리 떳떳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인 사람의 돈을 훔쳐낸다. 직접 할 수도 있고, 다른 도둑에게 정보를 주고 정보료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 돈을 진짜 돈이 필요한 곳에 나눠준다. (자기들 몫은 당연히 떼어놓는다. 그것은 기본!) 무허가 탁아소나 남을 돕느라 적자만 내는 병원 같은 곳이 그 대상이다.

그들의 생각은 한마디로 '떳떳하지 못한 돈, 좀 나눠쓴다고 뭐가 문제되겠는가?' 이다. 그렇지만 역시 도둑은 도둑... 주인공이 어떻게 돈을 습득하는가는 자세히 쓰지 않겠다.

재미있는 것은 쌍동이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맨처음 그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도둑질하려고 정탐하다가 걸렸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쌍동이들은 그가 도둑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에게 아빠가 되주기를 부탁했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그의 사업에 대해 들은 쌍동이의 대답을 이거였다.

"옆집하고는 왕래도 없고."

"인사했다가 무시만 당했고."

"갑자기 부자가 됐다면서?"

"조금 나눠가져도 되지 않아?"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유명한 도둑을 들자면 서양에는 로빈 훗, 동양에는 홍길동이 있다.(일본이나 중국 도둑 이름은 별로 알지 못해요.) 그들이 현재까지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은 범죄 수법이 잔혹해서가 아니다. 바로 정당성이 부여된 도둑질을 했기 때문이다. 둘 다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번 자들을 습격해서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래서 흔히 그들을 '의적'이라고 부른다. 의적이라는 이름 아래 도둑질은 빛을 바래고 오직 남을 도운 것만이 빛을 낸다. 의적이라면 거의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호응을 해준다.

주인공와 그 아버지는 의적까지는 아니지만, 선례를 따라서 그렇게 나쁜 놈으로는 묘사되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 나쁜 놈들이었으면 소설의 주인공으로 채택되지도 않았을 것이다.(범죄자가 자신의 수기를 출판하거나 범죄 사례집을 제외하고 말이다)

의적에게 호응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회적인 풍조이다. 주인공은 엄밀히 말하자면 의적은 아니지만, 의적의 포장지를 뒤집어쓰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한다. 쌍동이조차...

결국 이 소설은 네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 사이의 관계와 물질의 분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추리와 개그를 적절히 가미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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