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중국작가 아흘원보의 작품입니다. 1158화로 완결되었습니다. 고구가 주인공입니다. 고구는 현대에서 심장병을 앓다가 20세가 되던 해에 죽은 여성이었는데요, 고대의 중국으로 천월(타임슬립)해서 서북 진주의 자사 고지례의 딸 고구의 몸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첩이었던 사 씨가 정실로 승격되었는데, 이 계모가 고구의 생존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아버지 고지례는 자사 노릇을 하느라 바빠서 후원의 내부 사정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고구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온갖 꾀를 내지 않을 수 없었죠. 사 씨와 그녀의 아들딸이 고구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 온갖 계략을 쓰는데, 고구는 이 계략을 잘 분쇄합니다. 이 과정에서 황손인 유조를 알게 되었죠... 그 뒤의 줄거리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소설의 초반부는 온갖 음모와 계략이 나오고 엎치락 뒷치락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음모와 계략이 난무하기 때문에 ‘끝판왕’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지요. 그래서 추천하기 게시판에서 제가 그렇게 평가를 썼습니다.
그런데 중반부와 후반부에서는 스토리가 성격이 좀 달라집니다. 고구는 제도의 개혁과 문명의 발전을 유도합니다. 이런 것은 영지물(영지 발전을 주 내용으로 하는 판타지소설)에 가깝습니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다든지 서원(학원, 아카데미)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들이 다 그런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이렇게 진행해 버리면 무슨 설명충을 보는 것 같아서 별로 재미가 없지요.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 고구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진행합니다.
저는 게임소설을 좋아하는데요, 조아라에 가면 킴스낵 작가님의 작품들이 여럿 있습니다. LOL 게임을 끝내주게 잘하는 주인공이 온갖 소동을 일으키는데요, ^ ^ ㅋㅋ 그 중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들이 주루룩 달려서 나옵니다. 킴스낵 작가님은 이 댓글들로 독자를 많이 웃겼습니다. [후문의비]에서 아흘원보 작가도 이와 비슷하게 독자들을 웃깁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신하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ㅎㅎ 이처럼 고대와 현대를 적당히 섞어서 독자를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저는 고생스러운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고생스러운 부귀영화를 추구합니다. 황제가 되는 것을 최고로 중요하게 여기는 황자들을 보면, 저는 ‘왜 목숨을 걸고 저 고생을 사서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 보면, 황자들은 날 때부터 목숨을 걸고 황위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설정이 나옵니다. 만약 제가 황자라면, 일찌감치 레이스에서 벗어나서 한가한 왕야 노릇을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 소설은 초반 50화가 무료 분량이고, 1108화가 유료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지 여부를 무료 분량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임슬립을 다루는 판타지소설이나 차원이동을 다루는 판타지소설을 읽으면, 저는 항상 ‘아라비아 숫자’를 떠올리곤 합니다. 1, 2, 3, 4, 5, 6, 7, 8, 9, 0.... 이 숫자들은 사실은 인도에서 만들어졌는데,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해서 온 세계에 퍼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 숫자가 아니라 아라비아 숫자가 되어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직관적으로 명확하게 구별되는 기호이기 때문에 수를 나타내는 문자로서 딱입니다. [후문의비]에서 주인공 고구가 아라비아 숫자를 도입하지 않았는데요, 저는 이걸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여러분이 차원이동을 하거나 타임슬립을 하신다면, 아라비아 숫자를 널리 퍼뜨리시기 바랍니다... ^ ^
인간의 상상력은 어쩌면 단순히 ‘기억’에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억된 지식을 약간 변형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판타지소설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이 왜 하필 고대의 중국으로 타임슬립을 하는지, 왜 하필 중국 땅으로 타임슬립을 하는지 생각하면, 판타지소설가가 중국인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한국의 판타지소설가도 비슷합니다. 중세 유럽 정도의 문명을 배경으로 설정하는 판타지소설들을 읽으면서 항상 ‘좀 어슬퍼 보인다’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인간의 상상력이 기억에서 생겨났다고 가정하면 ‘관대하게’ 용인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세세하게 참과 거짓을 따지면 판타지소설을 읽을 수가 없지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국적인 면이 싫거나 고대 중국의 실제 제도와 좀 다르다는 면이 나오더라도 독자는 좀 너그럽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소설도 있지만,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천수를 다했습니다’라는 소설도 있지요. 주인공도 천수를 다 누리고 편안하게 잠이 듭니다. 애독자로서 슬프지만, 그래도 받아들일 만한 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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