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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 인위
작성
04.06.22 17:14
조회
1,071

몽유강호기 4권, 이상적인 약자의 모습을 보다.

[구소자는 강하다.]

여기 한 문장이 감상의 시작이다.

이 문장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마다의 생각을 하리라. 인위인위 저 사람이 어떤 면에서

구소자를 강하다고 여기는 지 얼핏 생각해 볼 것이고, 보통 위와 같은 시작이 흔히 드러내

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의 몇 가지 가닥을 미리 상상해 놓을 수도 있다.

그 중 가장 정석적인 추측은, 구소자의 강함을 그의 신념이나 꺾이지 않는 고집에서 보고

있다고 파악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역설이 아니다. 직진이다.

구소자는 강하다. 강한 것은 그의 무공이다. 오히려 구소자의 정신은 더없이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상적인 약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4권에서 구소자가 내공운용이 가능하게 되어 무공이 증진된 것과, 고문에 너무 쉽게 입을

연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구소자는 묘한 경계선에 서 있다.

많은 소설들의 주인공은 약자에서 시작한다. 남에게 짓밟히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천대와 모

욕을 받고 친인을 잃는 고통을 당한다. 독자는 그 상황의 구원을 원하게 되고 작가는 이 소

망을 들어 줌으로써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런데 약자란 무엇일까? 약자를 힘이 적기에 약자로 부른다면 세상의 누구나 약자다.

개미를 눌러 죽이는 아이는 강자지만 그를 때리는 어미 또한 강자다. 노역에 시달리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아내를 때리는 아비는 강자지만 그에게 채찍을 휘두른 감독관은 강자다.

그런 감독관 위에도 강자는 끝도 없이 많다. 누구나 약자인 동시에 강자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시선의 방향을 바꿔보자.

모습. 그것을 타인이 바라보고 느끼는 생각.

아무리 상대방이 나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문득 그가 불쌍해

보일 때가 있다. 그가 약자라 느껴질 때가 있다. 이유 없는 폭력은 없다. 무엇인가에 상처받

아서 이를 가리고 방어하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을 일상화한 불쌍한 영혼이 있을 뿐.

세상 모든 것은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속성을 가진다. 수만 명의 사람이

소유한 수만 개의 세계.

숱한 소설들에선 주인공이 힘을 가진 순간, 그는 이미 약자가 아니었다. 강자로서의 풍모

가 나타나고 강자로서의 행동을 하며 사람들 또한 강자로서 인정해 준다.

하지만 몽유강호기의 세계에선 구소자는 모두에게 약자의 인상을 준다. 그가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를 보는 모든 사람이 내심 깔보고 있다. 그를 조종하려 한다.

이 때문에 구소자는 강자임에도 분명하고 독자에겐 끝없이 약자로 보일 수 있다.

구소자는 약자로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소설에서 보기 힘든 묘한 즐거움을 지속적

으로 안겨준다. 구소자는 끊임없이 강하고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소망을 행동으로 드러낸

다. 늠름한 모습을 보이려 애를 쓰지만 사람들에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 시도는 끊임

없이 강자와 약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긴다.

다시 돌아와, [구소자는 강하다.]

그의 무공은 4권에 이르러 꽤나 강력해 졌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구소자의 약자

적 사고방식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4권에서 옛 친구 왕대룡이 유소를 두고 흥정을 하는 장

면에서 구소자는 크게 갈팡질팡한다. 구소자는 매우 커진 무위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유약하

다. 타의에 쉽게 조종당하지만 스스로 결정하는 거라며 자존심을 세운다.

사실 1~3권에서도 구소자는 강했다. 두드려 맞고도 이를 축적할 수 있는 능력은 구소자만의

강함이었고 이를 약함으로 본 것은 그 기준이 관념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보물의 위

치를 저만 몰래 아는 마냥 우린 그것에 즐거움을 얻었다.

다른 사람과의 충돌의 경우, 예전엔 맞는 재미가 있었고 지금은 때리는 재미가 있는 차이다.

하지만 그 동전의 양면만큼이나 다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구소자는 여전히 약자의 위치에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구소자는 약자로서 무시당하고 동시에

강자이기에 때려준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약자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가 그에 슬픔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이상적인 약자’는 강자여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약자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래서 몽유강호기 4권에서 나는 이상적인 약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제갈미미
    작성일
    04.06.23 00:36
    No. 1

    호오.. 어떻게 보면 가장 '대리만족형' 캐릭터일 수 있겠네요.
    영원한 약자이면서 영원한 강자이기도 한 그런 존재..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카셀울프
    작성일
    04.06.23 08:16
    No. 2

    으 보구싶네요.오늘 사러가려고 하는데......정말 궁금하군요 4권 내용이..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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