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선생의 책을 읽으면, 고전을 해석할 때 어느 정도 해석의 자유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확실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후세 사람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여지가 생기는 거죠. ‘당신의 해석이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태이니, 고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여 왔을 겁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도올선생은 이 문장을 공자가 노나라로 되돌아왔을 때 자신의 평생을 두고 한 말일 거라고 해석했습니다. 도올선생의 해석을 받아들이면, 이 문장은 모든 사람들에게 학습을 즐겁게 하라고 한 말이 아니라, 공자 개인의 소회가 됩니다. 자신의 평생을 대충 몇 문장으로 줄여서 표현한 것이죠. 배우고 익히면서 존나 즐거웠다.... 이렇게 해석하면, 공자가 배움을 좋아했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또 도올선생은 공자가 음악을 하도 즐겼기 때문에, 공자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노래방에서 살았을 거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극성팬이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ㅎㅎㅎ 공자에 대해서 근엄한 할아버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이 해석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나의 공자는 그렇지 않아....’라는 심정일 테지요... 그러나 누구의 해석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릴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책에 언급되는 공자는 이미지가 또 색다릅니다. 우선 공자는 2미터 정도의 거구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작달막한 사람들이 다수였던 시대에 공자는 ‘거인’이었던 거죠. 단순히 키만 큰 게 아니라, 힘도 천하장사급이었다고 합니다. 무슨 성문을 받치고 있었고, 제자들이 먼저 성밖으로 빠져 나갈 때까지 버틴 일화가 있다고 한 것 같습니다.
또 공자의 이마는 튀어 나와서, 이름이 ‘언덕 구’로 정해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말로 하면 공짱구라고 불릴 정도라고 도올선생이 말씀하시더군요... ㅎㅎㅎ 그러면 신장 2미터의 짱구 아저씨를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학자나 도사로 보이기보다는 마동석 같이 험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런 용모 때문에 제후들에게서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 즐겨 읽는 [절대타경]이나 [대하문성]을 읽다 보면, 이렇게 공자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저는 공자가 직접 책을 남기지 않은 것을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교과서로 만들어 놓았으면 되었을 텐데,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거겠죠. 설마 자신이 모든 중국인들의 사표가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알았다면 책부터 썼을 테죠...
저도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서 동영상을 만들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 ^ 잘 만드는 것까지는 못할 테지만, 일단 분명하게 정리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