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글을 올리게 된 동기는 둘입니다. 첫째는 내생애에 꾸준한 즐거움을 선사한 많은 읽을거리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고 둘째는 그읽을거리를 제공한 모든 작가님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피드백입니다.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제가 중학교때 여섯시간씩 도서실에서 모범생 아닌 모범생으로 지냈던 이유는 다름아닌 만화와 소설이었습니다. 닥치는대로 읽었던 시절입니다. 아침에 책가방에서 수학책을 빼고 도스도예프스키의 백치를 집어 넣던 기억이 있네요. 그때는 그저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재미있으면 공부시간을 희생해서라도 읽는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런 내게 정말 황당한일이 생겼는데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 것입니다. 언어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고 학교가서 헤매는게 기본인건 둘째치고 무엇보다도 소설을 읽을 수 없다는 충격에 한동안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평소 영어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뒀으면 동네 도서관에서 이솝이야기라도 빌려다 읽었을 텐데 졸지에 까막눈이 되어 버렸으니.
평소에 하던일을 못하게 되자 한국에있는 친구도 그립고 화도 났습니다. 또 학교가면 알아 들을 수가 없어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모든게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 도서실에서 그 책을 봤습니다.
“The Chronicles of Amber”(엠버 연대기)
나중에 알았는데 “엠버의 아홉왕자”로 시작해서 시리즈로 줄줄 나오는걸 묶어 놓은 책입니다. 표지에 이끌려서 첫장을 열어보니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는 와중에 “발가락”, ”눈을 세번 깜박였다”,“병원” 이라고 써 있어서, 아 시작부터 주인공이 병원에서 깼구나, 무슨 사고를 당했나? 진짜 읽고 싶다 라는 마음이 강렬했습니다. 결국 집에 갖고가서 읽는데 90 퍼센트는 전혀 모르는 단어로 구성되었음에도 대강, 아주 대강 스토리의 감이 잡히더랍니다. 이 단어는 자주 나오던데 모르니깐 진도가 안나가네 하는것만 사전으로 찾아보고 나머지는 대강 때려 맞춰서 읽었습니다.
그 책이 제가 읽은 첫번째 판타지였습니다.
물론 걸리버 여행기라던지 타임머신같은건 한국에서 읽었지만 그저 고전소설이라고만 생각되었고 엠버연대기 처럼 이계의 세상을 그린 판타지는 처음 봤었습니다. 그 책을 계기로 그작가가 쓴 책을 전부 찾아 읽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휴고 네뷸라에 리스트된것들을 비롯해 많은 판타지와 공상과학을 읽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엠버연대기의 몰입도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을 정도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나”인 일인층인데 사고를 당해 모든 기억을 잃은채 지구의 병원에서 깨어납니다.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엠버라는 황당무계한 세상을 자신의 기억을 찾아감과 함께 독자한테 조금씩 소개 합니다. 어른이 아이의 손을 잡고 이끌듯이 점 점 그 세계에 빠져 들게 만듭니다.
다시 말하면 독자를 “꼬셔서 주인공과 같이 동행하게 한다”는게 재밌는 소설 네레이션의 공통점인것 같습니다. 독자의 취향과는 별도로 이야기꾼의 쇼맨쉽 또는 역량에 이끌려 읽게 되는 소설이 곧 그 독자의 취향이 되는 경우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 전엔 판타지를 읽지 않았던 제가 그랬던것 처럼.
제가 문피아의 연재들을 보면 이런 요소가 아쉬운 작품들을 자주 봅니다. 필력도 좋고 묘사도 기가 막힌데 “여기써 놨으니깐 알아서 읽어” 같은 느낌의 작품들. 주인공이 혼자서 목적을 향해 질주 하고 독자로서 내 감정은 멀뚱히 뒤에 남겨지는 듯한 스토리전개.
물론 전부 다 그런 작품들만 있는건 아닙니다. 가끔 보석같은 작품을 발견하면 정말 즐거운 시간의 시작이 되고 문피아는 그래서 저한테 소중한것 같습니다.
중학교 반성문외에 이렇게 긴 한글은 처음 써 보는군요. 어색한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