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협은 꽤 성실한 축에 속한다. 주변에서 아무리 야유를 퍼부어도 스스로나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데뷰한 이래 줄곧 글을 써왔고, 몇 번의 슬럼프를 겪었지만, 항상 어찌어찌 넘겨왔다. 그리고 요즈음 스무번째 마감을 맞았다.
스무번째다. 이젠 슬슬 적응이 될만도 하련만, 마감은 항상 괴롭고 고통스럽다. 주변과 단절하고 수북한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즐거울리 만무하다. 그래도 열심히 마감에 임하고 있었는데....
못된 마귀들이 광협의 마감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보통 마감에 임하면 완전히 세상과 인연을 끊어야 하는 법인데, 이번엔 그렇지를 못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사소한 일이 개기가 된 부모님의 냉전이라거나 느닷없이 광협에게 떨어진 세금처리의 명령, 사악한 친구 녀석들의 집요한 꾀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 마감마다 그만한 일 한번 없었으랴. 광협은 한차례의 씁쓸한 미소만으로 모든 난관을 물리쳐야만 했다. 또한 그것이 바로 마감에 임한 자의 정신자세일 터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쉽사리 그리 되지가 않는다. 광협은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의 철벽같은 방어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마귀들에게 휩싸여 하루하루 자판과 멀어지고 있는 광협의 모습이 보인다. 아아, 그러면 안되는데....
따르릉!
"나와라!"
"안돼!"
"나와! 집에 오늘부터 출장간다고 말해뒀다구!"
"출장?"
친구의 씁쓸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얼마전 결혼한 녀석은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는 녀석인데... 일순 광협의 가드가 약해진다. 마음속에서 마귀가 오늘 하루만! 이라 말하고 있다. 아아, 이래선 안되는데....
오늘도 마귀한테 진 광협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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