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기사가 될 수 있었던 자격은 그 시기에 따라 좀 차이가 있다.
일단 기사 계층이 귀족, 즉 지배계층이 아닌 단순한 전문 무사 계층이었던 중세 초기에는 기사의 자격은 기사로써의 훈련을 받은 자로 기사의 무장을 ‘자비’로 갖출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대 로마에선 기사계급이란 계층이 있었는데 이들은 전쟁에 나갈 때 기병이었다. 고대 군대의 병사들은 군장을 자비로 마련해야 했다. 그러므로 기사계급이란 지휘관 계급이었던 원로원 계급 바로 아래 부유한 계급이다.)
자비로 말과 갑옷, 무기를 갖출 수 있다면 중세 초기에는 신분이 무엇이었던 간에 기사가 될 수 있었다. 다만 기사의 무장을 자비로 감당할 수 있으려면 농노 10~20명분의 수입은 있어야 했기 때문에 부유하지 않으면 애당초 기사가 될 수 없었다.
다만 농노라도 무슨 수를 썼건 기사훈련을 받았고 (대게 기사가 되려면 14년 정도의 훈련을 거침) 무장을 할 수있는 충분한 ‘경제적 능력’만 갖출 수 있으면 기사가 될 수 있었다. 일례로 12세기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농노의 아들로 태어나 기사를 거쳐 성주까지 된 케이스가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농노가 기사가 되는 것은 중세초기에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
그러나 12세기 이후로 기사가 귀족화하기 시작하면서 기사의 자격요건은 제한되게 된다. 12세기 이후로 기사의 최소 자격 조건은 자유민 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기사가 되려면 최소한 기사 이상의 작위를 가진 아버지를 둬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즉 평민 중 농노는 아예 기사가 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물론 12세기 이후에도 예외사항은 있어서 국왕이 농노출신의 병사에게 직접 기사 작위를 내리면 농노라도 기사가 될 수 있었긴 했지만 이 경우에는 뭔가 대단한 전공을 세우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작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자유민인 경우에는 영주의 성에 서전트(부관·하사관, 판타지에서 흔히 백인장 정도 되는 계급)로 들어가 기사훈련과 비슷한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서전트 특히 기병으로 복무한 서전트는 일종의 평민기사(기병)인데 영주가 자유민 출신의 병사 중에 일부를 기병 훈련을 받게 해 중장기병으로 복무하게 한 경우다. 평민기사가 되면 이중 일부는 영주 앞에서 눈에 띄는 전공을 세우면 정식 기사로 임명 받을 수도 있었다.
정리하자면 중세 초기에는 원칙상으로는 누구나 기사가 될 수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기사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만이 기사가 될 수 있었고, 12세기 이후에는 원칙상의 자격요건은 자유민 이상의 신분일 것이었고, 현실적으로 기사(기사, 남작, 자작 등등) 이상의 아버지를 둔 사람만 기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예외사항이 있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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