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학여울
작품명 : 혈염도
출판사 : 북박스
이 작품을 비평하는 이유는 흔히 문피아에서 말하는 ‘지뢰작’ 을 선정해내기 위해 비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글은 분명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혈염도는 표지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한 남자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르를 손에 꼽자면 역시 카타르시스를 대신 느끼 게 해줄 수 있는 복수극이 되겠습니다. 이른 바 막장 드라마라는 아내의 유혹이 욕먹으면서 괜히 인기를 끈게 아니죠.
특히 은원의 관계가 확실한 강호의 세계에서 복수극의 이야기는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는 얘기가 되겠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복수극의 탈을 쓴 초딩 깽판 스토리가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겠죠.
분명 표지엔 “비정한 복수를 위해 수련을 ....... ” 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면서 정작 내용엔 젊은 여자 후기지수들이 앞 다투어 주인공에게 달라붙으며 주인공은 ‘으이구 왜 내 옆에 달라 붙는 거야!’ 이딴 개소리나 지껄이는 지뢰작들 말이죠.
이 소설은 그런 복수의 탈을 쓴 수많은 지뢰속에서 빛나는 주옥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다른 것에 있으니, 용대운이라는 대한민국 무협세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작가가 만들어낸 독보건곤이라는 소설에 있습니다.
무협을 보는 사람이라면, 독보건곤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겠지요.
독보건곤 같은 처절한 복수극이 나온 뒤로부터는 다른 작품의 복수는 복수가 아니게 될 정도로 강한 임펙트가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결국 혈염도도 독보건곤이라는 책 하나 때문에 밋밋한 복수극이 되어버리고 말았지요. 물론 작가의 역량에 따라 더 비참하고 더 처절한 주인공의 행로를 그릴 수 있겠지만 제가 봤을 때 작가가 그려내는 방향은 ‘독보건곤을 뛰어넘겠다!’ 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죠. 일단 독보건곤의 주인공과 혈염도의 주인공, 모두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토대는 같지만 그 과정이 다릅니다. 그 과정을 일일이 나열하려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다만 제가 독보건곤을 인상 깊게 읽어서 그런지 혈염도의 주인공의 이야기도 분명 슬픈 비극이 맞으나 뭔가 밋밋하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특히 작가의 역량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복선과 암시에서 드러나는 데요, 독보건곤에선 이미 주인공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모욕을 당한 순간 혀를 깨물어 죽어버리려 했던 것을 서술하며 보통 독종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그런 그의 성격에 그가 걷는 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죠.
혈염도에서도 주인공은 분명 뚱뚱하고 인자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자신보다 강한 무력 앞에 주눅들지 않는 강직한 성격으로 나옵니다.
뭐 여기까진 좋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런 묘사가 아닙니다.
평화롭게 주인공 일가를 비추던 카메라가 정체불명의 집단으로 바뀌며 음모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음모의 타겟중 주인공 일가가 포착이 되죠.
여기서 그들은 마교와도 같은 옛날 중원과 싸웠던 종교 단체의 씨를 말리기 위해 정화작업을 한다는 구실을 세웁니다만, 사실 그들의 없애는 지역들의 단체는 별볼일 없는 그저 그런 단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씨를 말리는 작업을 한다면 그에 맞는 정확한 이유와 설명을 해주어야 함이 마땅한데 그런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런 반전과 속 이야기는 후반에 가서 펑 터트리며 갈등을 최고조 시킬 수 있겠지만, 만약 그런 장치를 쓰려고 했다면 절대 초반부터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나 단체, 또 저런 불필요한 장면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평화롭게만 살다가 갑작스럽게 습격당해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주인공. 영문도 모른 채 작은 단서 하나로 혈로를 걷는다면, 역시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들 역시 쉽게 감정이입이 되며 소설속에 동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또 하나 터집니다.
저런 주인공의 불길한 미래를 예측하는 씬이 대놓고 나온 바로 다음, 주인공의 부인이 뜬금없이 주인공이 너무 나태해졌다며 단련을 하자고 한 것입니다.
매우 뜬금없습니다.
주인공은 무림인 출신이고 그의 부인 역시 무림인 출신입니다. 단 부인은 일류 고수이며 처갓집은 무림에서 베스트 10 에 들어가는 극강한 고수이지요. 비록 주인공과 같은 삼류무사에게 시집을 가 부녀의 인연을 끊었다는 설정이지만 그래도 주인공의 뒤에 거대한 장인어른이 서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주인공과 가족들은 무림의 일에서 벗어난 채 상업으로 큰 돈을 벌었으며 아들 딸을 낳고 조용한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뜬금없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수련을 하라니요? 또 그것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는 주인공은 집 지하 비밀 통로를 개선하고 그곳에 1년치 식량을 숨겨두어 그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우리 가족을 보호할 수 있겠다고 부인에게 말합니다.
........ 아주 대놓고 ‘이제 곧 가족 다죽고 주인공 혼자 살아남아서 집 지하에 쳐박혀 무공만 익히겠군.’ 이라며 광고하고 있군요.
주인공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음모가 나온 뒤 바로 그동안 해이해 졌다며 수련하라는 아내. 그 얘길 듣고 바로 비밀방을 만든 주인공. 이런 표현은 쓰고 싶진 않지만 정말이지 그지같은 복선입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지극히 제 개인적인 비평입니다. 저는 정말이지 이런 복수극에 진짜 매력도 뭐도 없는 바보같은 여자애가 껴서 “가가!” 거리는 걸 싫어합니다. 아니 거의 모든 소설속에 매력없는 여주인공을 혐오하기까지 합니다. 말 그대로 주인공의 남근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전형적인 골빈 케릭터를 말입니다.
주인공이 계속 복수의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알게 된 처자가 있습니다. 특수한 병에 걸려 오늘 내일 하며, 최고의 신의를 가진 의원도 고치지 못하는 그런 처자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특수한 심법을 가지고 있어서 단번에 고쳐냅니다. 여기까진 좋습니다.
주인공에게 사랑에 빠져 가가 가가 거리는데 보면 볼수록 짜증이 납니다. 게다가 나름 반전을 위한 것인지, 주인공 가족을 죽음으로 내몬 단체의 수장이 그녀의 할아버지였습니다.
물론 그 할아버지는 착한 지존으로 그 음모에는 전혀 관계되지 않는 존재이긴 합니다만, 분명 그가 지배하던 단체에서 주인공 일가를 몰살시킨 것은 변하지 않죠. 그렇게 주인공과 그 할아버지가 만나는 나름 분위기 잡는 장면에서
“으앙 할아버지 왜 그런 나쁜짓을 하셨어요! 으앙!”
아주 분위기 깨는 걸 모자라서 골이 비었다는 인증을 스스로 해주시는 케릭터 군요.
차라리 저런 분위기에선 자신의 할아버지와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모습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게다가 이 여자는 골이 빈 것도 모자라 눈치도 없는 것인지 주인공이 다시금 피말리는 전투를 위해 떠나는 장면에서도 굳이 따라가겠다고 나섭니다.
“나 가가가 알려준 심법으로 강해졌음. 나도 짱세다는 히히.”
물론 저런 여자 케릭터의 대사나 주인공은 제 눈과 뇌에 장착된 필터링에 따라 더 심한 묘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제 취향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남자의 복수로서 저런 구조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 적어본 것 뿐입니다.
물론 독보건곤 에서도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는 나옵니다. 다만 그 여자 주인공은 앞서 말한 케릭터와는 달리 머리도 똑똑해 보였으며 매력 또한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독보건곤의 짧은 사랑 이야기는 피의 향연에 지친 독자들이 잠시 쉬어 갈만한 것이었다면, 혈염도의 사랑 이야기는 주인공의 피의 향연이 불꽃이 막 붙었을 때 찬물을 끼얹는 그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안 좋은 평만을 계속 했는데 저 같은 경우 저런 단점들을 제외하고선 분명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만 지금 6권 분량을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책에 손을 놓게 되더군요. 그것은 저 매력없는 여자 케릭터가 점점 많이 등장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9권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완결이 나지 않은, 이야기의 구조 때문에 있습니다.
복수극은 활활 타오르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소설속의 주인공은 너무나도 느긋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대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도 그렇게 흘러가고요. 이런 활활 타올라야 되는 복수극에 내용 전개가 느리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향이 나쁘지 않고, 간만에 재밌는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끝까지 읽어볼 생각입니다만
또 이 비평을 읽으시고 “아 재미없나?” 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1권이라도 한 번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비평은 제 개인적인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 쓴 비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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