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태규
작품명 : 풍사전기
출판사 : 뿔미디어
평어체로 씁니다.
2년의 시간동안 나에게 즐거움을 주던 글인 풍사전기가 완결되었다. 완결되기까지 추천을 아끼고 있었더니 만큼 좀 길게 써볼까한다.
글을 맛깔스럽게 하기위해 비속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작가의 역량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전 한 번 뒤적거리거나 인터넷 검색 한 번 하면 알 수 있는 단어나 용어를 틀리게 쓴다던지 문법에 맞지도 않고 심지어 말도 되지 않는 비문이 섞인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무협과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인 나를 참 힘들게 한다. 한 두번은 실수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몇 페이지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면 때로는 화가 날 때도 있다. '아~ 이것이 무협과 판타지의 태생적인 한계구나. 무협이나 판타지로 작품상을 받을 정도로 좋은 글을 쓴다는 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구나.' 내심 씁쓸하게 이런 생각도 해보곤 한다.
10년도 더 전에 도서출판 '뫼'등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고민없이 선택해도 나에게 실망감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좋은 책들을 사서 볼 수 없는 학창시절의 가벼운 호주머니를 탓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그 정도의 작품을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읽었더랬다. 용대운, 좌백, 장경, 설봉, 금시조, 이재일, 임준욱 등등 좋을 글을 쓰는 작가님들 수십명이 거의 동시대에 한꺼번에 쏟아졌으니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인터넷이 활성화된 90년대 후반부터 장르소설의 소비시장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확실히 작가층은 훨씬 넓어졌다. 그리고 책을 골라서 봐야하는 고민도 깊어져만 갔다.
무협과 판타지소설을 습관적으로 읽고 있는 나를 보면 쓴 웃음이 난다. 10권 안팎의 장편이 판을 치는 요즘 5-6권을 넘으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진다. 처음에 신선하고 잘 쓴 글이라고 생각되었던 작품조차도 중반을 넘으면 기대감이 사라지고 어느샌가 습관적 혹은 완결의 내용을 알기위해 문자그대로 '읽어 치웠다'.
물론 아직도 좋은 글을 쓰는 분들은 많지만(이런 분들은 대개 글 쓴지 제법 오래된 작가님들이다.) 가끔씩 대형신인이라고 말하는 분들을 빼면 초기작품이란 대개 거기서 거기다. 거기다가 좀 팔린다 싶으면 늘여쓰기까지 한다.
이미 풍사전기를 시작한 지 2년이나 된 태규작가님을 신인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겠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첫 작품이다. 첫 작품에서 이 정도를 보여줄 수 있다니 놀랄 따름이다.
사실 풍사전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신인치고는 잘 썼네' 이 정도였다. 스스로 건방진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내심 큰 기대감은 없었더랬다. 그런데 1권, 2권, 3권, 4권 권수가 더해질수록 책 속에 빨려들어가는 나를 보게 되었다. 오늘 마지막권을 권을 다 보고는 작가님에 대한 원망뿐이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기왕이면 1,2,3부 전부 4권씩 2권만 더하지ㅜ.ㅜ 요즘 좀 팔린다싶으면 늘여쓰고 시청률 좀 나오면 연장방송이 유행인데 의외로 풍사전기가 안 팔렸나하나 걱정도 앞선다. 이런 좋은 작품이 잘 팔려야 되는데......
풍사전기의 장점을 몇 가지만 쓴다면,
1. 문법에 맞지 않고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비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적절한 단어, 용어의 선택 또한 그러하다. 까놓고 말해서 요즘 나오는 무협과 판타지 100권을 무작위로 고르면 체감상 70-80권이상은 오타와 비문 투성이인 것 같다. 정확하게 조사해보지는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겠지만 작가의 역량이 안되는건지 출판사가 대충 편집하는지 진짜 대학생 리포터보다 교정이 더 안된거 같다. 확실하게 보장된 작가의 작품을 우선으로 보고 남는 시간에 이리저리 골라 보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하다.
2. 무협 특유의 고답적인 문체와 형로 특유의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롭게 버무려졌다. 이건 독자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갈리겠지만 적어도 나는 상당히 강한 인상을 받았다. 완결되고 후기에 보니 확실히 작가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고 작품에서는 수미일관되게 살아났다고 생각된다.
3. 인물의 차용이 상당히 적절했다. 시중에 나도는 무협소설의 배경중 80-90%이상이 원말에서 영락제의 사이인 것 같다. 작가는 역사적 인물들을 상당히 흥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사실 재해석 같은 건 아니라 순전히 이름만 빌려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공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짜여진 사건들이 갈수록 궁금증을 더해 주고 다음 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형로의 애달프고 고단한 삶과 그에 대비되는 유쾌한 말투와 살아가는 모습은 때로는 읽는 이를 유쾌하게 때로는 울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5. 조연들이 확실하게 살아있다. 아내 때문에 신선이 되지 않고 있는 철혼무제(생각만 해도 유쾌하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를 우습게 보지 못한다. 그의 포스는 후덜덜하다. 무적, 무쌍, 무패 그 누가 당하랴.), 유일도, 마영존마, 절대사천, 제세칠성, 백가흔, 청일소 등등 인물들이 확실하게 살아있다. 대개 천하제일이나 십대고수니 하는 것들은 주인공이 천하제일 또는 고금제일이 되기 위한 발판에 불과하지만 풍사전기는 그렇지 않다. 저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진다. '나는 풍사의 들러리가 아니다.' 나는 신마에게 반했다ㅜ.ㅜ
글이 길어져도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아무튼 풍사전기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글이고 서슴없이 추천할만한 글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 몇 가지...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에 마소산에 대한 부분이 아쉽다. 굳이 한 때 여주인공을 의형에게 가도록 하다니... 풍사는 슬프다.
환허궁에 대한 이야기가 미진했다고 생각된다. 풍와숙과 연결도 되는 단체이니 만큼 또한 현 무림의 대부분이 환허궁에서 파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조금 더 자세히 서술해도 좋을 뻔했다생각이 든다. 사실 풍와숙이 하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사절의 이야기도 풋내기 시절에 입질만 하다 끝내서 좀 아쉽다.
외전 형식으로 한두 권 정도 더 봤으면 한다. 하지만 약간 아쉬울 때 마무리하는 것이 딱 좋다는 것을 작가님도 나도 알고는 있다.
풍사전기는 한 번 읽고 궁금증이 해결되면 구석에 쳐박아 놓고 죽을 때까지 찾지도 않고 찾을 생각도 없는 그런 글이 아니라 가끔씩 뒤적여보고 웃음짓게 만드는 글이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우인회숙(友人會宿) -이백(李白)
滌蕩千古愁(척탕천고수)
留連百壺飮(유련백호음)
良宵宜且談(양소의차담)
晧月未能寢(호월미능침)
醉來臥空山(취래와공산)
天地卽衾枕(천지즉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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