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컥.
요란하게 문이 열리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이백근은 족히 넘는 거구의 사내를 필두로 십여명의 사내들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섰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창백한 안색으로 창밖을 주시하던 금강이 애써 웃으며 그들을 맞았다.
“갑자기 어인 일들인가?”
“그야......”
처음 입을 열었던 거구의 사내는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멋쩍은 얼굴로 선뜻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금강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긴, 놀랄만도 하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으니......”
금강의 말에 그들은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기사(奇事)도 이런 기사가 없었다.
분명 심장이 멎지 않았던가. 그의 죽음 앞에 너나 할 것 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침통해하던 때가 불과 사흘 전이었다. 무협계의 큰 별이 지셨다고, 이제 문피아는 누가 이끌어 가느냐며 통탄해 하지 않았던가.
확실히 그의 소생은 장례식에 참석하여 문상을 치렀던 자신들조차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저......”
망설이던 끝에 선두에서 서있던 거구가 말문을 열었다.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그런 그의 모습에 금강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선붙맞은 맷돼지처럼 집안에 뛰어들 때는 언제고 지금은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사내의 모습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덩치로 봐서는 곰이라고 해야할까. 어쨌던 그런 그의 모습은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전혀. 오히려 예전보다 지금이 더욱 건강해진 것 같군.”
태연한 금강의 대답에 백연은 더욱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우울해 보이십니까?”
“내가 그랬던가?”
금강의 반문에 나머지 사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죽었다 살아났다면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금강의 얼굴에는 짙은 수심이 내려앉아 있었던 것이다.
“자네들이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금강이 나직한 탄식과 함께 입을 열었다.
“나는 지옥에 갔다 왔다네.”
중인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방금 지옥이라 하셨습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금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 모여있던 작가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한 사람이 금강에게 다가섰다.
얼핏 보기엔 깡마르고 괴팍해 보이는 인물.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작가들 중 누구보다 침착한 작가. 박현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제서야 다른 이들도 자세를 바로하고 금강의 말을 기다렸다.
금강이 입을 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옥문 앞이었네.”
금강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하나도 꾸밈없이 자세히 설명했다.
처음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던 작가들의 얼굴은 그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천군을 이끌고 온 진무대제와 나찰과 함께 응수한 염라대왕의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예 경악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결국 태상노군이 직접 나서 그 싸움을 중재했다는 말로 금강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박현이 말했다.
“태상 노군이 앞으로 향후 오십년간은 천계도, 지옥도 선생님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 약조했다 하셨습니까? 그럼 잘 된 것 아닙니까? 무엇 때문에 그리 표정이 어두우신 지요?”
금강은 대답 대신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에 다른 작가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갈 뿐이었고......
이윽고 금강이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이야기를 꺼내자 지금껏 어느 정도 냉정을 유지했던 작가들 마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나찰들이 나를 가둔 곳.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만 달랑 놓은 독방에 그가 있었네.”
“그라 하시면?”
“서효원.”
“헉!”
“그가 나를 보며 웃더군. 옆에는 삼만 권의 원고를 쌓아 놓은 채.”
“......!”
어찌나 놀랐던지 할 말을 잃은 채 입술만 달싹이는 작가들을 향해 금강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서효원, 그가 나에게 말했네.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자에겐 천형이 주어진다고.”
“천형이라 하심은?”
“작가는 죽을 때까지 적어도 일만권, 질로는 일천질의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 했네. 이를 채우지 못하면 죽어서도 이를 달성해야 한다고 하네. 이를 다 채우기 전엔 지옥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지. 그래서 나를 보며 웃었던 게야. 나는 그때 조판 이십장을 채우고 있었거든......”
이른바 머신이라 불리우며 속필을 자랑하던 우각이 근심스런 얼굴로 금강을 불렀다.
“선생님.”
“왜 그러나?”
“지금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
“내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나?”
우각은 뚫어져라 금강을 응시했다. 하지만 예리하게 빛나는 금강의 안광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포스를 흘리고 있었다.
“사실...... 이군요.”
침음성을 흘리는 우각을 향해 금강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도 빨리 쓰게. 죽어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금강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 부터도 이럴 시간이 없군. 자,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만 나가주게. 나는 집필을 시작해야 하니.”
그때였다.
우당탕!
“서, 선생님!”
“무슨 일인가?”
금강은 갑자스레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고무판 연담지기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일이 터졌습니다.”
“나의 집필을 방해할 만큼 큰 일인가?”
면목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 연담지기가 대답했다.
“또다시 키보드 워리어 몇몇이 연담에서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하아......”
더없이 무거운 한숨이 금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금강은 마지못해 컴퓨터를 켜고 고무판에 접속했다. 그의 입에서 안타까운 음성이 터져나온 것도 그때였다.
“또다시 소림사 원고가 늦어 지겠군.”
그 한마디에 연화정사에 모여있던 작가들은 저마다 안타까움을 담아 고개를 저었다.
지난 번에 이은 후속편입니다.
제가 탈퇴하는 것은 오직 개인 적인 이유 때문이지, 고무판 운영진이나 금강님의 압력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오직 소림사 후속권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고무판에 일이 터질때마다 직접 나서서 마무리 하시는 금강님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담아 하소연 합니다.
제발 금강님 글좀 쓰게 놔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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