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별다른 비평없이 읽어오던 판타지의 세계관에서는 오크 리자드맨 자이언트
오거...이들은 판타지 세계에서는 철저히 몬스터 격으로 주인공인 인간들의 적으로
설정되어있었습니다.
왕따기사단의 초반 부분에서도 역시 이 틀은 별 거부감없이 그대로 유지되는듯 묘사
됩니다. 인간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영구종속마법에 걸려 노예화한 마법도시의 오
크와 리자드맨들...
그 마법도시와 그 도시의 주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마법사들은 학교에서 마법3차
원 방정식을 풀며 마법을 연마합니다. 거대한 창을 들고 용을 향해 달려가는 기사란
개념은 잠자리에서 할머니들이 어린 손자손녀들에게 들려주는 머나먼 구시대의 전
설로만 전해지지요.
(실제로 주인공은 말발굽 자국을 보며 '저 질서정연하게 찍힌 U자는 뭘까?' 라는 어이없는 장면을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해리포터의 한 장면을 보는듯 하더군요. 모든 것이 마법으로
해결되는 세상!
저 또한 그래서 왕따기사단을 읽으며 처음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이거 또 마법만 횡
행하는 얼치기 판타지 하나 나오겠군"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작가는 곧 비꼼신공을 발휘합니다.
즉 여차저차한 이유로 무리에서 떨어진 (확실히 끈 떨어진 연 신세로 전락한) 주인공
은 새로운 집단, 기사양성소 "스타크"(스타크래프트와 전혀 관련없습니다. ㅡ.ㅡ;)
에 들어가고, 거기서 주인공은 새로운 가치관들을 마주쳐 갑니다. (그 이후는 직접 읽어 보시길...스포일이 될까봐 ^^)
만일 독자들이 글 속에서
해리포터의 냄새를 맡았다면 그건 독자들이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읽은 것이라 생각
됩니다. 예를 들면 글에 등장하는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인간인 '에넴'은 해리포터
의 '머글'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해리포터가 '머글'을 은연중 상위 인간
인 '마법사'의 하위 개념으로 약간의 경멸적인 언어로 사용했다면 "왕따기사단3
조"의 작가는 '에넴'을 자연 그대로의 인간체란 개념을 지칭합니다. (물론 마법도시
의 오만한 마법사들은 해리포터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만서도)
즉 작가가 사용한 해리포터라는 텍스트는 철저히 비꼼을 위해 안배된 하나의 구도
일 뿐이니까요.
초록불님의 신작 "왕따기사단3조"에서 오크, 리자드맨, 트롤 이들은 더 이상 인간과
생김새가 다르며 그저 킁킁 거리기만 하는 몬스터들이 아닌,
엄연히 지적능력을 가지고 신을 숭배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등장합니다.
글 속에서의 각 종족과 캐릭의 특성은 하나하나 잘 묘사되어 독립적으로 살아움직이
고 있습니다. 흔히 판타지나 무협의 신진작가들이 보여주는 캐릭의 혼돈성 즉, 처음
엔 잘 살아있던 종족적인 특성은 어느 순간 모두 인간으로 통일되어버리며, 각 캐릭
터는 개성을 잃어버리고 주인공과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은 여기선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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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드래곤 라자"가 PC통신에 연재되었을때의 '마법의 가을'을 기억하시는 독자라면 이번 작연란 초록불님의 "왕따기사단3조"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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