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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5 바다별
작성
16.04.24 22:34
조회
2,198

제목 : 살인해드립니다

작가 : 로런스 블록

출판사 : 엘릭시르



  원제 - Hit Man

  작가 - 로런스 블록

 

 

 

  '켈러'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다.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중년의 독신이지만 고정적으로 사귀는 여자는 없다. 방탕하게만 살지 않으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재산도 모았고, 꽤 괜찮은 아파트에서 산다. 어떤 면에서는 다정다감하다고 볼 수도 있고, 감성이 풍부하며, 책임감도 있는 편이다. 신문에 실린 십자말풀이를 즐겨하고, 자기 취향에 맞는 식당을 찾으면 좋아한다. 다만 그에게는 마음 편히 속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거의 없다. 그가 주로 얘기하는 상대는 일하는 곳에서 연락을 담당하는 '도트'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으로, 동갑내기 친구처럼 편하게 지낼 수는 없다. 심리 상담까지 받아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그런 그의 고민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악몽을 자주 꾼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도시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위기의 중년 남성이 연상될 것이다.

 

 또한 그는 직업상 출장을 자주 간다. 게다가 한 번 가면 언제 일이 끝날지 모르는 게 태반이다. 출장지에서 그는 매번 모텔을 이용하는데, 그가 좋아하는 채널은 HBO다. 그 채널이 나오지 않는 곳에 묵기라도 하면, 그는 불안해한다. 그가 특히 싫어하는 모텔 유형은 리모컨을 고정시켜놓은 곳이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서이다. 간혹 출장지에서 마음에 드는 식당을 발견하면, 그는 입버릇처럼 '여기로 이사할까'라고 말한다. 물론 실행된 적은 없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고독에 몸부림치는 남자라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위의 두 문단으로 보건대, 그는 중년의 독신 남성으로 출장이 잦은 일을 하면서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해 외로워하는 비사교적인 남자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는 살인청부업자다. 그것도 꽤 실력이 좋은.

 

  '어르신'이라 불리는 사람이 의뢰를 받으면, 도트가 이것저것 준비해서 켈러에게 연락한다. 그러면 켈러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비행기를 타거나 차를 몰고 간다. 그리고 적당한 기회를 노려 목표를 죽인다.

 

  켈러의 입장에서 살인청부업이라는 직업은, 참고 기다리는 일이다.

 

  잦은 출장을 가야하고 언제 기회가 날 지 모르니 기다려야한다. 여자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눈다거나 연애다운 연애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이겨내야 한다. 사실 여자는커녕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일 친구도 사귀기 어렵다. 반려동물이라도 길러서 외로움을 이겨내고 싶지만, 집을 자주 비우니 어쩔 수가 없다.

 

  그가 처음부터 그 직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하다 보니 그게 제일 잘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직업을 찾아볼 생각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은퇴를 하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해볼 뿐이다.

 

  이 책은 우울한 몽상가 킬러인 켈러의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이다.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말을 탄 사나이 켈러』,『켈러의 상담 치료』,『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에 물을 줍니다』,『켈러의 카르마』,『빛나는 갑옷을 입은 켈러』,『켈러의 선택』,『현장의 켈러』,『켈러의 마지막 피난처』,『켈러의 은퇴』까지, 총 열 개의 사건 모음이 수록되어있다. 하나하나씩 읽다보면 어느새 그의 우울함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는 분명히 살인청부업자로 사회의 지탄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다른 스릴러 소설과 달리, 켈러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그를 잡으려는 경찰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들, 의뢰를 완수하는 과정이나 이후 쫓고 쫓기 추격 장면 같은 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켈러와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정체불명의 의뢰인이라든지 어쩌다가 친구가 되어버린 목표 인물과의 교감을 통해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물론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는 그냥 소소한 가운데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예를 들면 몇 년을 조심스럽게 살았어도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살인 청부의 대상이 된 사람을 통해 세상사 부질없음을 얘기한다거나, 어르신의 기억력쇠퇴로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내용을 통해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생사란 아주 우연찮게 나뉠 수 있고, ‘나’가 아닌 ‘남’에게 ‘나의 생사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켈러와 한 여인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인연이란 예고 없이 찾아왔다가 가버릴 수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만남은 선택이 아닐 수 있지만 헤어짐은 선택할 수 있으니, 진상으로 남을지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지는 자신이 고를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희망고문을 하는 것 같은 켈러의 살인 행각을 통해서, 온갖 망상에 상상을 하는 그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면서, 일을 끝내면 모든 것을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리는 그의 생활을 얘기하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은 끝이 있고,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Comment ' 1

  • 작성자
    Lv.12 알의생각
    작성일
    16.05.04 10:12
    No. 1

    바다별님은 전문 비평가이신가요? 아래에도 감상이 있는데 모두 읽어보겠습니다!!! 팬이 될 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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