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관련 제한이 풀리기 무섭게 동창회가 열렸다. 그간은 사는 꼴이 한심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참석을 거부했는데, 오늘은 다르다.
”어, 감자가 왔네?“
학창 시절엔 정말 듣기 싫었지만, 오랜만에 들으니 정겹기까지 하다.
“나이가 마흔인데 감자가 뭐야, 감자가.”
“오랜만이다. 다들 잘 지냈어?”
담담한 척 대꾸하며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야야, 어서 잔 채워.”
5분 늦었다고 다섯 잔 연속 마셨다. 덕분에 속이 후끈하다.
물려받은 철물점을 판 돈으로 용산에서 그래픽카드 장사를 해서 대박 낸 철용이, 말을 더듬어도 글은 잘 써서 기자가 된 기석이, 아이돌아이돌 하다가 아이돌 팬클럽 회장이 된 희경이, 시의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후 부동산 투자로 대박 난 천식이.
나이 마흔 되고도 아직 과장이라며 불평하는 대기업 다니는 대길이가 여기 먹이사슬 최하위다.
“감자, 요즘 어떻게 살아? 단톡방에서도 말 별로 안 해서 다들 널 궁금해해.”
“똑같지 뭐. 예전에 어머니가 하던 감자탕집 하고 있어.”
“이야, 사장 되셨네. 축하한다. 한 잔 마시자.”
술이 더 들어가자 드디어 용기가 생겼다.
“철용이 넌 제수씨랑 잘 지내?”
“이놈이, 형수님이라고 불러야지.”
“얘네 아직도 깨 볶는다. 맨날 단톡방에 사진도 올리고, 어찌나 꼴 보기 싫은지.”
“기석이 너도 제수시랑 잘 지내지?”
“어.”
남자들은 다 잘 지내고 있다.
“애숙이 넌 어때? 남편이 잘해줘?”
“왜? 잘 못 해주면 네가 대신 해줄라고?”
학창 시절 고백 편지를 받고 울면서 교무실로 뛰어가 담임한테 고해바치던 그 부끄럼 많던 소녀는 어디 갔을까.
“얘들아, 사실 나 고백할 게 있다.”
격동한 마음을 힘겹게 가라앉히고 말을 뗐다.
“나, 반년 전에 이혼했다.”
동창들이 펄펄 끓는 기름에 부은 얼음물처럼 순간 폭발했다.
“와. 진짜?”
“그럼 어떻게 됐어? 로또 1등?”
“에이. 대마법사쯤은 돼야지.”
“재벌 아버지가 불쑥 나타난 건 아니고?”
“천마의 영혼이랑 막 대화하고 그래?”
“설마.”
희경이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래?”
“트럭에 치인 다음 과거로 돌아가서 아이돌 되는 거 아니야?”
“다 아니야. 그냥.”
모두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본다. 태어나서 이렇게 사람들 관심받는 거 처음인 듯하다.
“홀아비가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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