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스포츠 서울 노창현 기사님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150번 정도 돌려 들으며 적은 것입니다.(라디오 방송국 연출자가 원본을 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어제 헌재는 "미성년자 성범죄자의 신원을 공객하는 것은 합헌이다."라고 결정내렸습니다. 믈론 법리적이나 또 인권 등을 고려하면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타당한 판결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퍼온 글과 한번 맞물려 생각해 보십시오.
참고로 먼(그다지 멀지 않았군 ㅡㅡ;) 훗날 과연 아래 글을 쓰신 분처럼 제가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이룰수 있을지...
< 개한테 물려본 경험, 아마도 이 말이 제일 정답인 것 같아요. 세상에 딸
가진 부모라면 한번쯤 생각해본 문제라 몇번을 망설이다 이렇게 적었습니
다. 지금은 환히 웃는 내 딸아이, 성폭행...남들 얘기인줄 알았습니다. 하지
만 운명의 장난인지 제 딸아이한테 닥쳐온 불행입니다. 그래도 초등학교때
부터 자주 던진 제 성교육이 아이의 일생을 바꿔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
니다.
우리 착한 딸, "세상엔 어떤 어려움도 있고 때로는 불가항력으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다가 될 수 있는 일이 있어. 그럴땐 엄마하
고 아빠 그리고 형제들을 생각해라.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이야. 만일 너가 타인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면 그건 네 잘못이 아
냐. 그러기 때문에 목숨하고는 바꾸지말아라"하는 말을 초등학교때부터 딸
아이들에게 했었어요. 그렇게 어린 시절 제 말을 듣고 딸은 커 왔습니다.
다른 날보다 좀 늦네 싶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밤 10시, 밤 11
시, 밤 12시...딸아이가 들어온 시간은 새벽 2시. 메이커를 찾지 않는 딸아
이는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이었고 흐트러짐이 없었는데 그날 들어온 딸아
이 얼굴엔 멍이 들어 있었고 교복치마는 흙이 묻어 있는채로...집에 들어서
지마자 쓰러져버린 내 딸...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어버린 눈가, 그리고 다
큰 아이 딸아이 다리에 선명한 핏자국...그것이 성폭행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119에 의해 병원으로 응급 후송이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예기치 못할, 아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겪었습니다. 아이의 성격은 극
도로 초긴장상태에 있었고 그때부터 학업은 접어야 했습니다. 늘 재잘거리
는 수다는 벙어리처럼 입이 닫혀졌습니다.
딸아이의 일기장에는 '두 사람이...두 사람이...죽여버릴거야...' 그렇게 무서
운 말들이 적혀 있었고 딸아이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대인기피증에다 우리
가족은 아예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습니다.
며칠후 걸려온 전화 한 통화. 경찰서였습니다.
전화를 받고 달려갔고 그곳에 수갑을 차고 앉아있는 두사람.제 또래의 딸을 가지고 있을법한 제 나이의 남자들이었습니다. 경찰서 안의 집기가 보였고 무조건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법보다 먼저인게 주먹이라 하지만 법 앞에 주먹은 뒷전이었습니다.
딸아이가 늦은 시각, 학원에 오는 시각에 맞춰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성폭
행을 했고 피해자가 몇 명 더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치심때문인지 모두들
없던 사실로 미루었어요. 하지만 전 제2, 제3의 범행이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그 파렴치한 사람들을 법 앞에 서게 했습니다. 만일 그 때
제가 숨겼더라면 지금의 딸은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딸은 진술을 했고 그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저희 가족은 딸아이의 모든 면을 관찰했습니다. 병원부터 집에서
의 모든 생활까지. 아내와 저, 그리고 작은 딸아이까지 우리 가족은 매일
매일 사랑의 편지를 적었고 힘있는 자가 힘없는 사람을 괴롭혔다는 단순한
일로 생각하게끔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울었고 또 울었고 닥치는대로 집기를 던졌고 송곳으로 자신을 자해했습니다.
"딸아~ 그래. 내가 전생에 너한테 빚을 많이 졌나보다. 마음껏 나한테 풀어라.." 그렇게 말을 하는데 딸은 저를 송곳으로 찔렀습니다. 작은 어깨에 깊이 패여 피가 흘러내렸고..하지만 저는 아픈줄을 몰랐습니다. 딸아이가 받은 상처에 비하면 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딸아이의 행동에 눈물만 흐르더라구요.
"딸아~우리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지금부터 좋은 인연만 쌓아가자.
그래야 다음 생애에도 너와 아빠가 부녀지간의 인연이 되지 않겠니.
너 이렇게 힘들고 그리고 너는 한 사람이지만 나머지 엄마 아빠 그리고 니 동생은 어떡하니..."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옆에서 송곳으로 찔린 제 어깨를 아내는 헝겊으로 감싸줄려고 했었지만 저
는 아내의 눈을 보며 말렸습니다. 내 착한 딸은 "아빠 미안해..미안해..제가
잘못했어요"하면서 송곳에 찔린 나의 어깨를 감싸주더군요.
평생을 배워도 다 못 배우고 가는게 공부였습니다. 한참 뛰어놀 나이에 학
원에서 그렇게 혹사시켰으니...
학업을 잠시 접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같이 산에 올라가고
낚시를 가고, 바다 가고, 재래시장의 좌판에서 애가 좋아하는 핸드폰 줄과
햄스터를 사주고 떡볶이를 같이 먹고.. 그렇게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던 딸
이 "아빠~나 그때 죽을려구 그랬는데. 아빠 말이 생각나서 죽지 않았어..."
하구 말을 합니다. '성폭행과 목숨은 바꾸지 않는다'는 아빠의 그 말을 마
음속에 새겨놓았던 모양입니다.
늘 중간이었던 성적이 올해 다시 복학해서 성적도 최상위급으로 몰라보게
나아진 딸, 딸을 보며 전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알 것 같습니다. 그때 만
일 딸아이에게 무서운 일이 생겼다면 우리 가족이 짊어지고 가야 할 좌절
은 엄청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틈틈히 말해 왔던 작은 성교육이 이렇게 희망의 빛으로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아빠 말처럼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면 돼!" 그렇게 말하는 딸.
어느새 아빠 마음까지 감싸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지...
저는 매일 딸아이들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큰 딸 그리고 작은 딸... 엽기적인 유머에 찐한 사랑의 농담까지 그럴때마다 더 찐한 농담으로 되돌아오는 딸아이들의 메일.
메일을 보면서 아마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 어떤 큰 좌절이 오더라도 꿋꿋
이 이겨낼 수 있는 가족애가 있어 더없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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