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원을 다녀오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잠시 집앞의 벤치에 앉아 광합성을 했습니다.
아직 어려보이는 사내아이 둘이서 제 맞은 편 벤치에 앉더군요.
둘은 마치 심각한 고민에 빠진 어른처럼 침울 한 얼굴로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습니다.
저런 어린 나이에 무슨 고민이 있길래 저럴까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가만히 바라 보고 있노라니 한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형.이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게임 다 팔아야지."
"그거 다 팔면 우리집이 안 망해?"
"오락기는 무지 비싸니까 안망할꺼야."
"그런데 누구한테 팔아?"
"오락기 산데 다가 다시 가서 팔면 되지않을까?"
"그런데 형. 오락기에 붙은 빨간색 종이는 어떻게 해?
그거 붙으면 못 판다고 했어."
"그럼 몰래 떼고 팔면 되지않을가? 하도 많이 붙여서 어디에 붙였는 지도 모를꺼야."
너무나 아이들 답기에 그래서 슬픈 대화였습니다....
아직 10살 정도 뿐이 안되보이는
그 어린 아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이 짊어지기엔 너무나 버거워 보였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낸 세계가
그 아이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지......
오늘 그 두 아이를 보며 전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 나오는
제제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속에서 악마가 살고 있어서
성탄절에 자신의 귀여운 동생이 선물을 못받는다고 믿던
순수한 제제를 말입니다.
실직한 아버지와 탈장에 걸렸으면서도 복대를하고 공장에 다니는 어머니..
그러한 환경속에서
제제는 세상의 슬픔을 너무 빨리 깨우쳐버리지요..
장난꾸러기 제제는 사회에 지친 어른들의 삐뚤어진 세상을 바라보면서
6살이 못된 나이에 어른이 되어갑니다...
아이가 걱정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것들은 고민하던
제제에게도 친구는 있습니다.
자신과 늘 대화하는 집 뒷뜰의 라임오렌지 나무 밍기뉴와
커다란 자동차를 가진 포르투카라는 마음씨좋은 아저씨입니다.
하지만 포르투카의 죽음으로 제제는
밍기뉴마저 잃어버립니다..
이제 제제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제제의 눈으로 본 삶과 슬픔은 제제를
아이로 내버려두지 않았나봅니다.
전 오늘 그 두 형제를 보면서
어린 제제를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제제로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순진하지 못하다고 영악하다고
요즘 아이들을 말하는 어른들은 많습니다.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빨리 조숙해져야하는지....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지...
지금 이순간 수많은 우리의 아이들이
두형제와 제제처럼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삶과 슬픔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이들이 아이들 답게
동심을 잃지않은 어른으로 자라나게 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 그 두형제의 마음엔
제제의 마음속에 라임오렌지나무와 같이
베어지는 일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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