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발에 밟히는 크립의 감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날은 꼭 센티널 놈들이 쳐들어 오는 법이다. 전장에서 내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었던 감을 나는 믿고 있다. 품안에 들어 있는 여러 도구들을 점검해 보았다. 안티 포션, 디스펠 막대기, 체력, 마나 회복 물약 그리고 한, 두방 정도는 더 버티게 해줄 신비의 광석, 생명의 돌.
감을 믿고 마법 상자를 통해 치즈를 구입했다. 이 마도구를 발명해 낸 사람은 엄청난 천재이거나 미친놈인 게 분명하다. 10레벨의 고정화와 9레벨의 계면이동, 5레벨의 공간 확장, 4레벨의 원격조정을 상자에 동시에 걸어 놓다니.. 어쨌거나 편리한 건 사실이고 마음껏 이용해줘야겠다.
치즈를 구입하고 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멍청한 구울, 보이드 녀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슬슬 출진을 준비해야한다. 여차하면 이번에 배운 데스핑거를 날라고 살아남도록 하자. 안과 밖을 뒤집어놓는 이 마법은 상당한 고위마법이다. 왠만한 방법으론 막을 수 없는 마법이니, 내 생명을 지켜주고 적을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가자.
편안함을 주는 크립을 벗어나 맨땅을 밟는다. 응? 땅이 울린다. 드루이드와 페어리 드래곤의 날개짓만으론 이렇게 땅이 비명을 지를 리가 없다.
설마?
역시...상대는 전차부대를 이끄는 갈리토스였다. 마법의 도끼와 전기장을 만드는 비트에 항마력을 가진 갑옷을 가지고 있는 졸부 자식이다. 마도구를 떡질해 놓은 만큼 쉬운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평소라면 내가 어려워할 상대도 아니다. 내 마법은 마도구 파훼에 특화된 카엘브 학파, 그냥 만났더라면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였다.
하지만
땅을 울리며 다가오는 전차를 보며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광역 회복마법에 자폭기능까지 갖춘 저 무시무시한 전차는 무서운 마도구이다. 대체 집에 돈이 얼마나 있길래 저런 마도구까지 가지고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이 많은 날이 될 것 같다. 여차하면 헥스를 걸고 도망가기로 하자. 저 무식한 도끼에 내장된 스턴만 맞지 않는다면 충분하다. 이기진 못하더라도 도망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전차를 앞세우고 센티널 군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전차와 거리를 두며 드루이드와 페어리를 임페일로 처리했다. 잡병들은 내 상대가 아니다. 콧수염을 힐긋힐긋 곁눈질하고 있었는데 왜인지 저녀석이 전기 충격기를 꺼내들지 않는다. 마력이 부족한 걸까? 게다가 어디서 몇대 맞고 왔는지 곳곳에 피도 흘리고 있었다.
....혹시 연속캐스팅으로 저녀석을 보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망설였다. 빠르게 손익을 계산해 본다. 여기서 저녀석을 잡는다면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다. 어차피 이 근방에 배치된 마법사는 나 뿐이다. 전장에 계속 투입되어야 할 운명이라는 거다. 전차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저녀석을 잡고 나면 저런 멍청한 기계에 내가 당할 리 없다. 좋아. 가자!
빠르게 주인과 캐스팅을 끝내고 세 마법을 대기 상태로 해 놓았다. 헥스, 임페일, 데스핑거. 이거면 충분하다. 슬쩍 거리를 좁히며 빠르게 마법을 발동시켜 녀석을 양으로 만들어 버렸다.
성공이다!
헥스가 들어갔으면 더 볼 것도 없다. 캐스팅이 필요없는 에너지 볼트를 날리며 타이밍을 재서 임페일을 날렸다. 아직은 죽지 않는군. 역시 무식한 녀석 답게 제법 체력이 좋다. 하지만...나에겐 이게 있다.
데스핑거!
마왕의 저주를 모방한 이 마법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멍청한 졸부자식은 쓰러졌다. 죽었거나 빈사상태에 들어 간 것 같다. 갑옷의 마항력 덕분에 속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건 아쉽지만 저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내장이 다 뭉개졌을 게 뻔하다. 승리에 희열에 몸을 떨고 있던 나는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다.
펑!
전차의 폭발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내 의식이 멀어져간다.
치즈, 퍼볼그의 마법의 치즈를 사용한다면 살아 날...수.......
희생의 전차가 6레벨 악동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습니다! [부활없음]
언데드 악동님께서 게임을 포기하고 나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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