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손장검은 등에 매는가?
그런거 없습니다. 등에 매면 인간의 신체구조 때문에 효과적으로 발검이 불가능합니다.이건 힘이나 민 첩성이나 그런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신체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체구조가 다르지 않은이상 소드마스터이던 그랜드마스터이던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게 가능하려면 신체대 팔길이 비율이 원숭이마저 초월해야하죠. 의심가시는 분은 장대 하나 등에 매고서는 한번 그 장대끝이 어깨위를 지나가게 해보려 노력해보세요.
그럼 실제 역사에서는 어떻게 클레이모어나 쯔바이핸더같은 흉기를 들고 다녔는지 의문이 들으실겁니다. 그거에 대한 대답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1) 안 들고 다녔다. 저런 무기는 전장에서나 사용하는, 현대무기에 비유하자면 m2 브라우닝 기관총 같은거죠. 냉병기로 국한시켜 비유하자면 3~4m짜리 파이크를 호신용이랍시고 들고 다니는거랑 비슷하겠고요. 장기간 휴대하라고 만들어진게 아닙니다.
2) 만약 전장의 상황 때문에 병사가 직접 휴대해야하는 경우에는 보통 이렇게 휴대했습니다.
무게중심이 어깨에 닿은 상태에 손잡이에 대충 손을 걸쳐서 떨어지지 않게 고정한 자세입니다. 아니면, 가슴과 어깨 사이에 날을 기댄채로 검신은 윗쪽으로 올라오게하고 마치 창처럼 고정시켜 휴대할 수도 있고요. 그거 그림은 못 찾았습니다.
2. 여성용 판갑은 가슴이 튀어나와있는가?
여성적 특징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장식처럼 달아놓은게 아니라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딴거 없어도 갑옷 잘만 입습니다.
p.s. 생각해보니 지금은 2가지 말고 떠오르는게 없어서 뻘쭘해진 나머지 적는 몇가지 역사적 사실들
1. 현대 아프가니스탄과 북인도 부근에는 그리스계 왕국들이 여럿 존재했었다.
2. 중세 중기의 가장 거대한 도시들로는 코르도바와 팔레르모가 있는데 둘 모두 이슬람이였다. 둘 모두 제법 국제적이고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모습을 띄었다는건 덤. 둘 모두 이후 카톨릭에게 점령당했다는건 또다른 덤.
3. 중세 후기의 가장 거대한 도시는 그라나다였는데, 이 역시 이슬람이였다. 이쯤되면 짐작이 가겠지만 그라나다 역시 카톨릭에게 점령당했다.
4. 터키의 수도는 이스탄불이 아닌 앙카라인데, 앙카라를 누가 먼저 건설했는지는 여러 논란이 있다. 가설들 중 하나는 무려 켈트족이 앙카라를 건설했다는건데, 맞던 틀리던 켈트족이 앙카라에 정착한 적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5. 한 때 러시아는 루릭이라는 자의 후손들에게 지배 받았는데, 이 루릭은 사실 바이킹이다.
6. 바이킹들은 흠좀무하게도 그 유명한 다마스커스 검과 비슷한 재질의 무구를 사용한 적이 있다. 어떻게 그런 오버테크놀로지 무기를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볼가강 무역을 통해 인도의 우츠강을 수입해 제련했다는 가설과 스칸디나비아에서 직접 목탄을 통해 제작했다는 가설이 있다. 아마 둘 다 했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 둘다 그럴듯한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
7. 중세 후기 비잔틴 제국의 제2도시 테살로니키에서는 무려 코뮌 정부가 수립 된 적이 있다. 일부 특권층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경우가 잦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는 제법 다르다. 그야말로 민중에 의해 민중을 위해 세워졌고 민중이 다스리던 말 그대로 코뮌이였다. 코뮌 지도부들중 한명은 일반 하역부였을 정도니 뭐...
8.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한 자들은 바이킹이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입증 된 사실이다. 왜 영구적인 정착지가 세워지지 못했는지에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한 가설은 우유를 선물했더니 유당불내증을 가진 원주민들이 독이라 착각해 공격했다는 내용이다. 아마 아니겠지만 재밌기는 하다.
9. 고릴라를 최초로 발견한 자들은 카르타고인 탐험가들이였다. 카르타고인들은 고릴라를 그 지역 원주민이라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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