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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천명관 고래에 대한 감상

작성자
Lv.11 환승플랫폼
작성
15.03.30 11:35
조회
1,187

확실히 논쟁이 된 소설이었습니다.

이야기 내내 소설의 틀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고래는 소설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우선 작자가 자꾸만 화자로 개입하여 천연덕스럽게 상황에 대해 논하는 모습은 소설의 프레임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난데없는 작자의 목소리가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은데, 기이하게도 이야기 속에 휘말려 들었지요.

 

또한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복선을 던져서 김이 새게 만들었으나, 동시에 이미 아는 결말로 치달아 가는 과정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데, 전지적 작가 시점과 관찰자 시점의 중간자적 태도를 취한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 인물에 대해 이러이러한 허무맹랑한 소문이 있다.’고 말하고는 ‘믿든지 말든지’라고 눙쳐 버리는데, 믿지 않을 수가 있나요? 판타지의 특성이 일반 소설과 현대적 배경에 어색하지 않게 녹아난 데에는 이 부분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정말 빛나는 명작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감상에 대한 감상 --------------

 

그런데 저는 읽는 내내 한 번도 고래가 ‘장르 문학’의 특성을 가졌다거나, 일반 소설의 틀을 깨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거 ‘엄청난 소설’ 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밤새 책을 다 읽고 나니, ‘소설 같지 않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학 동네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잘 썼어요.

구태여 다른 흠을 잡고 싶지 않을 만큼 잘 썼어요.

 

사실 일견 딱딱하고 고루해 보이는 글의 세계는

‘잘 쓰면 그만’ 이라는 절대적 실용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 증명 불가.)

잘 쓰면 소재나 세계관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점이 되겠지요.

 

결국 판무가 질적으로 높은 독서일 수 있는가

재미만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답은,

작가와 작품 단위로 따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쓰면 그만!’

 

저는 그럴 능력이 없으니, 아직도 무관심 속에 열심히 명작을 집필 중인 작가 분들을 열심히 읽으려 합니다^^

 

------------ 감상에 대한 감상에 대한 망상 ------------

 

김훈이 레이드물을 쓰면 어떨까요?

그 세상도 개연성이 없다고 비판 받을까요?

아닐겁니다.

강줄기 흐르는 모양과 바람결에 흘러오는 짠내만으로도

던전 출몰의 개연성을 묘사할 겁니다.

판무 작가들의 글보다도 더 짧은 단문체로도 속이 꽉 찬 문장을 쓸 테고

감질나고 안달 나게 재밌게 플롯을 짜면서도 치열한 문제의식이 담길 겁니다.

 

그런데 겁나게 우울하겠네요 ^^;

 


Comment ' 11

  • 작성자
    Lv.55 짱구반바지
    작성일
    15.03.30 11:37
    No. 1

    그것은 고래의 법칙이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환승플랫폼
    작성일
    15.03.30 11:38
    No. 2

    맞다. 읽으면서 내내 궁금한 게 '법칙'을 반복하는 것이었는데.
    어떤 의미였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짱구반바지
    작성일
    15.03.30 11:42
    No. 3

    의미라기보다.. 독자를 가지고 노는 듯한 기분이.. 보통 그런 반복구는 조금 나오다 끝나는데 끝까지 나오면서.. 근데 그 말이 정말 묘한 설득력이 있더군요. 예를들어, 그것은 소문의 법칙이었다. 이러는데, 아 그럴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점점 빠져들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환승플랫폼
    작성일
    15.03.30 11:45
    No. 4

    맞아요. 암 그렇지. 법칙이지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더라고요.
    합리성에만 기반한 법칙을 조롱하고 '글'과 '인간성' 에 기반한 법칙을 주장하는 것 (같다고 제멋대로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 같아서 속이 시원하기도 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짱구반바지
    작성일
    15.03.30 11:38
    No. 5

    근데 천명관 씨의 고래에 대해 글도 아니다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나요? 저는 진짜 읽고나서..작가가 날 가지고 노는구나 하면서 탄복했거든요. 진짜 대단한 글인 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환승플랫폼
    작성일
    15.03.30 11:40
    No. 6

    고래가 2004년 작품이니만큼 당시에는 호불호가 많이 갈렸었다고 하네요. 노파의 저주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 것이 조금 납득이 안 가기고 하고. 그래도 저에게도 빛나는 명작이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라앤주
    작성일
    15.03.30 11:55
    No. 7

    고래에 호불호가 있었다니, 전혀 몰랐어요. 대박 신인 탄생으로 들썩였던 기억만...
    신인상 받은 '프랭크와 나' 무척 흥미있게 읽었는데, 곧바로 나온 '고래' 읽고는 같은 사람이 썼다니 놀랍다고 생각했었죠.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본문 글 읽고나니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환승플랫폼
    작성일
    15.03.30 12:01
    No. 8

    고래 단행본에 문학동네 편집의견으로 직접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거꾸로 말하면 그 소설에 대한 비판 의견을
    대놓고 단행본에 실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는 말도 되겠지요.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흉갑기병
    작성일
    15.03.30 13:04
    No. 9

    일단 그냥 재미있습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그것 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환승플랫폼
    작성일
    15.03.30 13:14
    No. 10

    맞아요.압도적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일
    15.03.30 14:25
    No. 11

    한국 문단은 리얼리즘'만' 인정해주는 경향이 꽤 컸죠. 요 십 몇년 사이 상당히 바뀌었습니다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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