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핸드폰 사용했다고 퇴학당한 사람이 4명이나 되네요. 세상에... 금품갈취나 폭행도 아니고 핸드폰좀 만졌다고 퇴학이라니... 것 참; 되게 무섭네요. 핸드폰 쓰지 말아야지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수업시간에 핸드폰 사용했다고 퇴학당한 사람이 4명이나 되네요. 세상에... 금품갈취나 폭행도 아니고 핸드폰좀 만졌다고 퇴학이라니... 것 참; 되게 무섭네요. 핸드폰 쓰지 말아야지
패러디님//
그걸로는 보통 잘해야 정학으로 알아요.
반대로 휴대전화 사용으로 퇴학이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아래는 그나마 알려진 일입니다.
이후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집단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이슈화 되어도 이정도일 수 있다는 것이죠^^
<a href=http://ko.wikipedia.org/wiki/%EB%B0%80%EC%96%91%EC%A7%80%EC%97%AD_%EA%B3%A0%EA%B5%90%EC%83%9D%EC%9D%98_%EC%97%AC%EC%A4%91%EC%83%9D_%EC%A7%91%EB%8B%A8_%EC%84%B1%ED%8F%AD%ED%96%89_%EC%82%AC%EA%B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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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후
경미한 처벌 논란
41명의 가해자와 70명의 추가 공범자들 중 처벌받은 남학생은 30명이었다. 당초 밀양 사건을 수사한 울산 남부경찰서는 44명의 피의자들 중 13명만을 구속 수사하고 나머지는 훈방조치했다.[40] 그 과정에서 밀양 출신의 한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밀양 물을 다 흐려놨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이 드러나 ‘경찰이 피해자를 두번 죽였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40]
당시 사건을 수사한 울산지검은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피의자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하고, 20명을 소년부로 송치했다. 또 13명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14] 13명은 피해자의 아버지가 합의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죄혐의로 풀려났다. 1명은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타청에 송치되었다.
그뒤 2005년 3월 22일 울산지검 형사2부는 집단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밀양 고교생 박모(19)군 등 10명에게 징역 장기 4년에서 집행유예 3년(징역 2년6월)을 각각 구형했다.[41] 검찰은 이날 울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황진효.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박군에게 징역 장기 4년 단기 3년을, 우모군 등 4명에게 징역 장기 3년 단기 2년6월을, 김모군 등 5명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구형했다.[41]
소년부로 송치된 20명 중 4명은 소년원 1년, 16명은 봉사활동 및 교화 등의 처분을 받았다. 기소된 10명 중 일부는 보석을 신청하기도 했다.
검찰은 “고교생들이 수 회에 걸쳐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으로 사회적 충격이 컸으며, 피고인들의 상호 진술에서 공소사실이 인정되는데도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죄질이 불량하다”며 “그러나 청소년이고 초범인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41] 박군 등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최모양을 혼자, 또는 2명이상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반지와 팔찌 등을 빼앗은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됐으며 당초 경찰에 입건됐던 이 사건의 전체 피의자 43명 가운데 20명은 소년부에 송치되고 나머지는 ’공소권 없음’ 등으로 처리됐다.[41]
이후 울산지방검찰청 특별수사팀이 ‘엄정 수사’를 천명하며 이 사건을 맡았지만 구속된 13명중 7명만을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3명은 불구속 기소, 20명을 소년부에 송치하는 선에서 4월 7일 사건을 종결했다.[40] 사건은 울산지법이 2005년 4월, 기소된 10명에 대해 부산지법 가정지원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마무리됐다. 피의자들은 소년원에서 보호관찰을 받았고, 지금은 직장인이나 군인·대학생으로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14] 그러나 경미한 형량이 문제가 되어 네티즌들의 항의가 계속되었다.
검찰이 나서서 조사했으나 구속은 7명이 구속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던 것이다.[40] 결국 5명이 소년원의 보호처분을 받았을 뿐 나머지 가해 학생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간 셈이 됐다.[42] 3개 고교의 가해학생 중 학내에서 징계를 받은 학생도 1개 고교 7명으로 3일간 교내봉사활동에 그쳤다.[42] 추가 용의선상에 있던 70명은 조사조차 되지 않았고, 솜방망이 처벌은 문제가 되었다.
위키백과 내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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