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된 건 얼마 전입니다. 평생 신앙이 없던 분이 갑자기 성당에 다니겠다고 하시더군요. 여기까진 괜찮았습니다. 제가 신앙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저에게 같이 가자고 강요를 하거나 생활을 바꿔야한다고 하지 않는 한 개인의 신앙까지는 터치하지 않거든요.
1달 전쯤인가요. 성경 공부를 하러 다닌다고 하시더군요. 성당과는 다른 독자적인 모임이었습니다. 평일에도 매일 3시간씩 하는데 뭔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나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그냥 넘겼습니다.
이번 일요일에 말씀하시기를 신천지였다네요. 모르시는 분들은 검색 한 번 해보세요. 하여간 일요일에 그쪽에 더이상 안 나간다고 말씀하시고는 월요일에 마지막으로 만나고 끝내셨습니다.
처음엔 친구에게 우쿨렐레 교실에 다닌다고 했더니 자신의 친구도 다닌다고 했더랍니다. 그 사람과 만나서 친해지고 무슨 한자로 배우는 인문학인가 강연에도 다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소개로 성경 공부까지 연결이 된 거죠.
이제서야 들은 말이지만 성경 공부 모임에 들기 전에 입단서를 내셨답니다. 사진까지 붙여서 냈다네요. 여기서 딱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소모임, 스터디그룹 같은 곳에서 주소 등의 개인정보와 사진까지 요구하는 입단서를 받는다는게?
하여간 일을 마무리하고는 그 사람들 무섭다고, 치밀하다고 계속 말씀하시더라고요. 월요일에도 들었습니다. 어제도 계속 들었고요. 오늘 아침에도 또 말씀하시길래 못 참고 말했습니다. 나는 종교에도 관심이 없고 세상사 뭘 해도 별 흥미가 없으니 그만 걱정하시라고. 그런 데서 날 끌어들이면 나도 내가 어디까지 빠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그러니 화를 내시는 겁니다. 세상도 모르는 놈이, 공부만 해온 놈이 순진해 빠져서는 자기가 잘난 줄만 안다고 말입니다.
와, 그 순간 울컥 하는게 내가 순진한 인간이면 세상의 그 어떤 인간이 순진하지 않은 인간이냐고. 정치판이나 사업판에 뛰어들어서 남의 뒷통수 때리는 인생을 살아봤어야 하나, 아니면 술먹고 사고도 쳐보고 다단계에도 빠져보고 사기도 당해보고 꽃뱀에도 걸려봤어야 하나.
진짜 할 말은 많은데 효도는 못 할망정 더 길게 싸워서야 되겠냐는 마음으로 그냥 다 속으로 삼켰습니다.
물론 절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걸 제가 모르겠습니까. 부모한테 자식은 언제나 어리게 보이죠.
근데 제가 세상사, 자기 주변에조차 별 관심도 흥미도 없다는 걸 아시는 분이,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영 차가워서 당신 입으로 너 참 정 없다고 신하신 분이 저보고 사기, 다단계, 보증 조심하라고. 난 워낙 아싸라서 나보고 그런 거 서달랄 사람도 없고 해달라고 해도 안 해줄거라 해도 실제로 누가 부탁하면 또 다른 거라고.
제가 정말로 세상사에 비판적이고 반골 기질로 넘쳐나는 사람인데, 허위과장광고로 시정명령을 받은 업체에 계속 다니시면서 온 몸이 다 아픈 것이 몸에서 안 좋은 곳이 다 나아가는 과정 같다고, 걸어다니지도 못 하던 사람이 여기 다니더니 이제 잘 걸어다닌다고, 탈모 있던 사람이 다니더니 탈모가 없어졌다고.
이런 말들을 하시는 분이 저에게 순진하다고 하니 정말 참기 힘들었네요.
그냥 얼른 집을 나가는 게 상책같습니다. 누나와 1년 자취할 때도 느꼈습니다만 얼굴 맞대고 살면 싸울 일만 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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